[GLOBAL EYE] 경제 살리기와 ‘교양입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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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21면

선거의 해에 경제 이슈가 뜨거운 감자가 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문제는 경제다, 바보야’ 식의 선거구호는 이제 경제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는다. 후보자의 국가경영 능력이 갈수록 중시되고, 도덕성보다는 경제 살리는 능력이 표심을 좌우하는 추세다.

태국 국민들은 지난 23일 1년3개월 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전 총리의 복귀를 공약으로 내건 ‘국민의 힘’ 당에 압승을 안겨주었다. ‘부패보다는 먹고사는 게 우선’이라는 표심이 그를 도로 불러들인 것이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탁신보다는 경제였다.

같은 날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은 민주화의 꿈을 접고 88.1%의 압도적 지지로 현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에게 3선을 안겨주었다. 체제붕괴를 겁내 1991년 독립 이후 줄곧 폐쇄정책을 고수해 온 그에게 ‘독재를 용인해 줄 테니 제발 경제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먹고사는 것이 최우선 가치로 올라선 것은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사르코지 경제학(Sarkonomics)’은 또 다른 경제 살리기다. 두 번 이혼에다 톱 모델 새 연인과 공개 데이트를 즐겨도 국민들은 ‘경제만 살리면 된다’며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프랑스는 최근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18위의 저평가를 받았다. 실업률은 8.5%로 선진국 평균의 배가 넘는다. 주 35시간 근로에다 신규 채용도, 해고도 어려운 노동시장의 경직성 때문이다. 사르코지는 이 벽을 무너뜨리겠다고 나섰고 그 첫 시험대가 악명 높은 철도노조다. 길거리 항의시위 등 ‘거리의 정치’는 프랑스 정치의 일부라며 철도노조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때를 이용해 밀어붙일 기세다.

헝가리 유대계 혈통에다 비속어를 즐겨 쓰고, 미국에 우호적이고, 세계화를 포용하려는 등 그는 여러 면에서 비(非)프랑스적이다. 세금을 줄여 주고 연구개발과 교육투자로 성장을 촉진시켜 ‘새로운 프랑스’를 건설하겠다고 기염이다. 레이거노믹스(레이건의 경제학)에 프랑스적 억양을 붙인 그의 개혁이 성공하면 80년대 영국을 되살려냈던 마거릿 대처 이후 유럽 최대의 경제개혁으로 기록될 판이다. 그가 ‘선출된 군주’ 같은 ‘초특급 대통령’으로 프랑스를 21세기 글로벌 강국으로 올려놓을지, 아니면 실패한 경제 포퓰리스트로 주저앉고 말지는 세기적 주목거리다.

경제 살리기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다. 단기적 성과나 수치적 목표에 집착하면 선심성 정책 위주의 포퓰리즘에 빠지기 십상이다. 경제 살리기의 본질은 지속적 성장으로 고용과 소득을 꾸준히 창출해 가는 일이다. 그 주요 척도가 경제성장률이지만, 이는 나라 전체 경제활동의 총체적 결과물이고 다른 나라 경제들의 성장과 글로벌하게 연동돼 있어 인위적으로 어떤 숫자적 목표를 내걸거나 달성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성장 게임에서 일본과 독일·프랑스가 미국을 따라잡았으면서도 미국을 능가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꼽힌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고취하는 교육시스템, 그리고 자유롭게 창업하고 활동하는 왕성한 기업가 정신과 그 제도적 유인장치다. 사유재산권 보장과 금융· 신용시장의 인프라가 여기에 뒷받침된다. 경제가 따라잡기 단계를 지나 선진권을 넘볼수록 이 여건 조성이 경제 살리기의 핵심이다.

도덕성과 민주주의가 물론 밥을 먹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둘이 빛을 발할 때 경제는 더욱 활성화되고 역동성도 극대화된다.

도덕성보다 경제 능력을 우선하는 경제 살리기는 우리 모두를 죽이는 길이다. 경제 지상주의가 인성을 황폐화시켜 나라를 망하게 한다며 구국의 제언으로 ‘교양입국 일본’을 내건 일본 어느 수학 교수의 외침이 더없이 신선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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