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시대 2005년 우리의 모습 시나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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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다.자유.공정의 깃발아래 새로운경제질서를 일궈내기 시작하는 해다.새로운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한국인의 생각과 행동도 달라져야 한다.정부는 민간에 서비스하는경쟁력있는 정부로 다시 태어나야 하고,기업은 세계화를 겨냥한 자기변신을 거듭하지 않으면 하나로 엮어지는 세계시장에서 자리매김을 할 수 없게 된다.정부도,기업도,또 국민도 세계경쟁에 나서야 하는 때가 됐다.WTO체제가 자리잡게 될 2005년의 한국인을 그려보면서 우리의 대응자세 를 점검해 본다.
〈편집자註〉 宋국장은 지금도 관세청에서 일하던 친구생각을 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수입개방이 되니까 연말이 돼도 인사오는사람이 없어 사무실이 썰렁하다면서 좋은 시절 다 갔다고 한숨이다.「수입선다변화」품목으로 묶여 있었던 일본수입품을 그 친구 가 허가해줄 시절에는 학교동기 중에서는「잘 나가는 사람」축에 낄 수 있었던 친구다.이제는 별 볼일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5년이 채 되지않는 공무원생활로 통상산업부의 주무국장을 맡게된 초고속승진 케이스다.이제 40세.통상산업부로 오기 전에는 재벌기업 세계통상에서 주로 외국기업과 합작이나 기술제휴업무을 맡았다.25세에 입사한 후 10년이 됐을 때는 벌써 업계에서 이름이 났다.이때 통상산업부에서 교섭이 들어왔다.중소기업국을 기업서비스국으로 바꾸면서 사람이 필요하다고 의사를 물어왔다.3대째 공무원을 하던 집안에서 장사꾼 나왔다고 늘 불만이던 아버지 생각이 나서 탈바꿈을 하기로 결 심했다.
기업서비스국은 사실상 宋국장이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다.업계를 도와준답시고 조그마한 사업,큰 사업 구분없이 도장을 찍어주는 맛에 공무원하던 사람들 보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기업에 서비스하라니 고참공무원들의 혼란은 말로 표현할 수 없 었다.
宋국장의 책상위에는 도장이 없다.이제는 기업서비스국 손님으로외국기업인이 더 많다.외국기업도 우리나라에 있으면 우리기업임을실천한 결과다.
새로 지으려는 공장에 맞게 전국의 부지중 적당한 곳을 알선해주고,허가나 신고절차를 대신해주는「한번 방문-처리 센터」가 바로 宋국장 아이디어였다.1백여 군데의 허가를 받아야 했던 시절에 어떻게 장사했을까 궁금해 할 정도로 직원들의 생각도 바뀌었다.이 정도면 기업형 행정을 자랑하는 싱가포르정부와의 행정경쟁에도 이길 자신이 있다.
崔전무는 아침에 일어나 농협정보센터와 연결된 컴퓨터 단말기부터 켰다.새벽 도매시장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서다.5년전부터는 전국각지의 도매시장 가격변동을 5분단위로 알 수 있게 됐다.어제 시장에 내놓은 귤값이 걱정이었다.지난해 캘리포 니아 오렌지농장에서 들여온 다수확 귤이 열매를 맺어 첫선을 보인것이다.
어제 서울 도매시장에서 한 상자에 5천원하던 귤이 오늘 아침에는 4천8백원 한단다.컴퓨터 화면에 반짝이는 것이 있어 보니,안산시장이 뜨고 있다.한 상자에 5천1백원.귤 2백상자를 싣고 서울로 떠난 트럭을 당장 무선전화로 불러낸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위치는 천안.서울 가락시장말고 안산도매시장으로 차를 돌리라고 지시한다.제발 도착할 때까지는 값이 더 떨어지지 말아야 할텐데.오늘 하루를 넘기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오늘은 주주들에게 1주일 영업실적을 보고하는 날 이기도 하다.원래 그는 쌀장사 전문이었다.쌀농사짓던 한동네 2백30여가구가 모여 5년전에 제일개발을 세웠다.처음에는 의견들이 분분했다.이제는 추곡수매를 하지도 않아 쌀값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다,올해부터는 관세만 물고 만만치 않게 들어올 미국쌀과 경쟁해서 승산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그러나 몇몇 젊은이들이 우기고 또 어른들을 설득했다.아직도 남아있는 정부의 경지정리보조금에 각자의 푼돈을 모아 일궈낸 1백50만평의 논에 필리핀에서 개발한 「슈퍼쌀」을 심어 수확을 시작한지 3년.흑자는 첫해부터 나기 시작했다.이곳까지도 들어오기 시작한 미국쌀을 이겨냈다고 온 동네사람,아니 제일개발 주주들이 한바탕 막걸리로 잔치를 벌였다.
***31面에 계속 그가 구상한 것은 당시 용어로 전략적 제휴(Strategic Alliance)였다.각자가 기술을 얻고공장을 돌리고 물건을 파는데 돈.자본.기술.경영능력 무엇이든 같이 쓰고 남은 것을 나누어 갖는 일종의 영업자산 공유체제라고나 할 까.
우선 자본의 상당부분을 이자율이 싼 일본에서 구했다.재벌집 아들인 일본친구가 한 몫을 했다.칩 디자인은 칼텍(Cal Tech)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미국친구가 책임을 졌다.기초소재는 수원에 조그마한 공장이 있는 그가 맡았다.
중요한 것은 조립공장의 입지였다.한국은 이미 임금이나 땅값이오를대로 올라 공장이 있을 곳은 못되었다.
전남과 경북도지사들이 새로 시작할 경제특구(特區)에 들어와 달라고 로비를 했지만 결국 정한 곳이 중국 톈진(天津).임금이아직도 싸고 조립기술도 많이 나아졌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한중경제협력에 열성이던 중국주재대사가 중국정부관리 들의 설득에 나선 것도 그로서는 행운이었다.
모든 산업이 정보화되면서 개인컴퓨터의 용도에 맞게 고안된 김사장의 통일7형 컴퓨터칩은 부상하는 아시아의 경제활력과 맞물려全아시아 정보망을 구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요즈음은 신문.방송 인터뷰에 바쁘다.
***유통회사 국제담당 상무 이영일씨 이상무는 싱글벙글이다.
원래 무난한 성격인 그가 올해 더 기분이 좋은 것은 선진국에서수십년동안 수입을 규제하던 섬유류가 올해부터 전세계적으로 완전자유화되기 때문이다.
그의 영업본부는 일본에 있다.주영업으로 등록한 것은 무역이다.그러나 공장은 나진에 있다.이태리에서 디자인을 들여와,한국의한성방적에서 원사를 뽑아,이를 나진에 있는 「자유공장」에 보낸다. 주요시장별로 만들어진 옷을 한아름유통이 세계각국의 현지 유통전문회사들을 통해 시장에 내보는 것이다.인건비상승 때문에 한국에서는 이제 섬유는 어렵다고 했다.
1996년부터 줄어든 합리화자금도 2000년에는 철폐되어 이제는 정부보조금은 한푼도 기대할 수 없다.그야말로 자력경쟁의 시대가 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섬유업계에 뛰어든 이상무가 내다 본 것은 세계시장이 점점 「지역블록」으로 가는 추세였다.
미국대륙이 하나로 묶이고,유럽은 러시아를 뺀 동구와 서구가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5년전에 출범했으며,아세안도 자유무역지대를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의 구상은 규모가 크든 작든 세계화기업이었다.지역블록을 뚫고 나가는 길은 세계를 하나로 엮는 것 뿐이기 때문이었다.공장입지.인건비.기술.유통등 모든 단계의 영업활동중 세계 구석구석에서 가장 싸고 질이 좋은 것만 골라 쓰고 자기는 전체 흐름을관리한다면 세계 어디에서도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세계의 자원이 다 그의 자원이었다.
***海外 외국은행 지점장 금인호씨 오전 9시반.금지점장은 싱가포르 회계전문회사에서 보내온 자료와 자기 컴퓨터의 자료를 비교한다.
도이치은행이 회계업무를 외주(外注)주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10년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해부터였다.독일은 은행의 법정퇴근 시간이 오후 4시.은행이 3시에 문을 닫으면 잔무처리하느라 지점장이 제 시간에 퇴근할 수가 없었 다.그래서 은행잔무처리를 외부회사에 맡기기로 했다.
싱가포르의 회계업 전문회사가 그 일을 따 갔다.오후 4시에 퇴근하면서 그날 영업내용을 싱가포르 회사에 전산입력만 하면 된다.독일이 잠자고 있을 시간에 싱가포르가 작업을 해서 독일은행들이 아침에 문을 열 시간이면 이미 정리된 자료는 국제금융전산망을 통해 관계자 책상위에 도착해 있다.싱가포르는 독일보다 인건비도 싸다.독일 직원들에게 시간외 근무수당을 줘 가며 일을 시켰을 때보다 마음도 편하다.
은행도 이제는 겸업(兼業)주의를 택해 돈을 꾸어주고 예금을 받는 일은 전체 영업중에 별로 되지 않는다.주식.부동산.채권.
보험등 각종 금융상품을 은행이나 증권회사 어디서든 다룰 수 있고,고객들도 이제는 재산을 은행이 대신 관리해 주 기를 바랄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
가끔 들르는 한국 친구들한테 들어보면 한국금융도 지난 수년동안 많이 변했단다.특히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이후 대부분의 외환거래와 자본거래가 자유화되어 이제는 외국주식.부동산.외국환.채권 등을 마음대로 사■ 팔 수가 있어 국제업무가 은행일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광주시 주부 이현숙씨 이씨는 아침에 전자신문 『지금』에난 기사를 보았다.필리핀 민다나오섬 해변에 콘도가 새로 섰다.
관광단지 한 가운데 있어 투자가치가 있단다.올해로 해외부동산을사는 것이 풀린지 10년.지방에서 부동산을 굴리던 이씨가 해외로 눈을 돌 린지도 7년.이 계통에서는 꽤 이름이 나 있다.
인터네트와 연결을 한다.부동산 코너를 검색한다.아니나 다를까.벌써 필리핀 콘도의 거래가격이 나와 있다.
이씨는 광주은행 자금관리대행부서의 박왕근씨를 전화로 불러 상담 한다.이씨가 담양군에 가지고 있는 조그만 대밭을 팔면 그 돈이 된단다.당장 하이텔 부동산코너에 들어가 담양땅을 내놓았다.콘도값이 그대로 있어야 할텐데,걱정이다.
골칫거리가 하나 있다.칠순의 시어머니가 자꾸 덴마크제 밍크코트를 하나 사야겠단다.그것도 꼭 덴마크에서 사야 진짜라고 우긴다.인터네트로 덴마크와 연결한다.특산품 코너와 연결이 되었다.
모델이 밍크코트를 입고 걸어가는 모습이 컴퓨터에 나온다.아마 시어머니가 이걸 본 모양이다.
이씨가 보기에도 탐이 난다.구입자란에 이름과 광주은행 계좌번호를 입력한다.이참에 나도 하나 살까,이씨는 망설인다.
〈金廷洙 본사전문위원.經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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