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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 되기 전 궁궐 모습 첫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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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조선총독부서 찍은 경복궁 근정전 주변 사진. 전각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현재 앙부일구는 몸체가 받침돌 위에 노출돼 있으나(맨오른쪽) 일제 때 사진에는 몸체가 받침돌 안에 있다. 또 빗물이 빠져나오게 하는 구멍이 있음이 확인된다(왼쪽과 가운데).

 전각들이 꽉 들어차 ‘정부청사’를 이뤘던 경복궁 근정전 주변, 일제가 품계석을 없애고 화단으로 만들어버린 창덕궁 정전 인정전, 지금과 달리 몸체가 받침돌 안에 맞춤하게 들어가 있는 앙부일구(세종 때 만든 해시계)….

 일제 때 조선총독부에서 촬영했던 유리건판 사진들이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궁(宮)-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궁궐사진’ 기획전을 28일부터 내년 2월 10일까지 연다. 박물관은 1909년∼1945년에 조선총독부서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 3만8000여장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 중 궁궐 관련 사진 500여점과 상량문·현판 등 관련 유물들을 내놓았다. 유리건판은 감광제를 바른 유리판으로 셀룰로이드 롤필름이 발명되기 전까지 사진필름으로 쓰였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효율적 통치를 위해 고적·민속·인물 등 다양한 주제를 사진으로 수집해 방대한 자료로 만들었다. 조선총독부박물관에 보관해 오던 것을 광복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게 됐다. 박물관은 97년부터 유리원판을 정리해왔으며 이번에 궁 관련 사진들로 첫 전시를 연 것이다. 앞으로 매년 주제별로 사진 자료들을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왕조시대에 궁궐은 나라의 상징이자 심장이었다. 일제는 경복궁에 총독부 건물을 짓고, 명성황후를 시해한 뒤 건청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총독부 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궁궐을 훼손했다. 훼손돼 가는 조선 왕조의 궁궐 모습은 옛 필름인 유리원판에 남아 흑백사진으로 아련하게 되살아났다.

 이 사진자료는 또한 과거사에 대한 논쟁이 불거질 때 확실한 증거자료로 논점을 정리하는 역할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광화문 현판이다. 어떤 글씨로 복원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던 2005년초, 박물관은 1916년 촬영된 유리건판 사진을 내놓아 글자를 판독했다. 박물관 김홍남 관장은 “전시를 보러 오시는 분들이 조선왕조 궁궐의 훼손된 곳을 마음 속에서 복원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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