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부토 전 총리 피살 … 분노한 지지자들 거리 곳곳서 총 난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부토 전 총리를 죽인 자살폭탄 테러범은 그를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총과 자살폭탄이라는 이중의 공격 무기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테러범은 집회 현장을 떠나려는 부토의 자동차를 향해 수 발의 총을 쏘았다. 파키스탄의 아리1 텔레비전은 부토가 머리에 총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총격을 당한 부토의 차량이 현장을 빠져나가려 하자 자살폭탄이라는 결정타를 다시 터뜨렸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강력한 폭탄이 터지면서 20여 명이 즉사하는 등 테러 현장은 순식간에 소름끼치는 피바다로 변했다. 한 목격자는 폭탄이 터진 직후 시신과 몸통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 한 개가 도로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고 말했다.

부토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지지자들은 그가 숨진 라왈핀디의 병원 바깥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화가 난 일부 지지자들은 거리로 뛰쳐나가 지나다니는 차량에 무차별적으로 돌을 던지면서 반 무샤라프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무샤라프의 집권당 선거포스터도 닥치는대로 훼손했다.

현장에 있던 파키스탄 야당지도자 나와즈 샤리프는 슬퍼하는 부토 지지자들을 향해 "전 국민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 지금부터는 부토의 전쟁을 내가 치르겠다"고 약속했다. 부토의 고향인 카라치에서는 시민들이 거리 곳곳에서 총을 쏘며 그들의 분노를 표시했다. 파키스탄 서북부도시 페샤와르 등 다른 지역에서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사건 직후 세계 각국으로부터 테러행위를 비난하는 성명이 쏟아졌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번 테러를 "가증스러운 행위"라고 단죄했다. 쿠슈네르 외무장관은 부토의 가족과 다른 희생자들, 그리고 파키스탄 국민들에게는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 "파키스탄 정치사에 탁월한 인물이었던 고인에게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미하일 카미닌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부토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한다"면서 "우리는 이러한 테러 행위를 단호하게 비난한다"고 말했다. 카미닌 대변인은 또 "파키스탄 지도자들이 국정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잘 취해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CNN과 ABC, 폭스 뉴스 등 미국의 주요 방송들과 영국의 BBC 방송은 이날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부토 전 총리 사망 소식을 일제히 긴급 뉴스로 다루면서 극도의 혼란에 빠진 파키스탄 테러 현장 장면을 반복해 보도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 대변인은 이번 사태에 대해 논평을 요구받고 "정확한 사실을 먼저 확인해야겠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한편 10월 부토 전 총리가 8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던 날에도 그를 노린 것으로 추정되는 두 차례의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130명 이상이 숨졌었다.

박경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