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이' 검찰도 놀란 2007 사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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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특별한 직업이 없던 한모(61)씨는 지난해 초 경남 지역 조선업체 사장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만났다.

그때마다 그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동아시아 담당관'이라고 적힌 명함을 줬다. 한씨는 "사장님들이 해외펀드에 투자하시면 적극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명함을 믿은 업체 사장들은 한씨에게 돈을 건넸다. 이런 방법으로 한씨가 투자비와 활동비 명목으로 받은 돈은 19억원. 그러나 명함은 가짜로 드러났고 한씨는 지난해 4월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이때부터 한씨의 부인 장모(56)씨는 남편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장씨가 자신을 '부산지검 검사'라고 소개한 최모(54)씨를 만난 것도 이즈음이었다.

장씨는 검은 양복차림에 금테 안경을 쓰고, 절도 있는 몸가짐의 최씨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최씨는 "검사들에게 술접대를 하고, 언론에 로비를 해야 한다"며 청탁교제비를 요구했다. 장씨는 남편과 상의해 여덟 차례에 걸쳐 모두 7510만원을 줬다. 그러나 남편은 석방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사에 착수한 부산지검 특별수사부 수사과는 최씨를 올 3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한 수사 관계자는 "뛰는 가짜 위에 나는 가짜가 있다는 말을 실제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20대 A씨는 게임 도중 채팅을 통해 '같은 또래'라고 밝힌 여성 B씨를 알게 됐다. 이후 수개월 동안 e-메일로 사진을 주고받고, 전화를 통해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한번도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스스럼없이 "자기야"라고 부를 정도의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A씨는 B씨가 "스키장에서 사고가 났는데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전화하자 곧바로 86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그 뒤 연락이 끊겼고 A씨는 B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A씨는 B씨가 46세의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내연녀의 딸까지 탐한 파렴치범이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사건도 있다. 40대의 C씨는 내연녀의 딸 D양이 대학에 지원했다 낙방한 사실을 알고 해당 대학 교수인 것처럼 전화를 걸었다. "면접 때 보고 마음에 들었다. 벗은 몸을 보여주면 합격시켜 주겠다"고 꼬드겼다. 스튜어디스 지망생인 D양은 C씨의 지시에 따라 으슥한 골목에 서서 바바리코트로 가렸던 알몸을 드러냈다. C씨는 10여m 거리의 승합차 안에서 얼굴을 숨긴 채 사진을 찍었다. C씨는 며칠 후 교수인 척 D양에게 다시 전화해 "40대 남자와 성관계 하는 장면을 사진 찍어 보내지 않으면 나체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은연중에 어머니 친구인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C씨는 울면서 연락해 온 D양과 성관계를 한 이후 "그 사람이 나까지 협박한다. 이번에는 동영상을 보내달라고 한다"고 속여 재차 성관계를 가졌다. D양의 신고로 C씨의 엽기 행각은 끝났다.

대검찰청은 26일 이들 세 사건을 포함해 올 한 해 전국 지검.지청 검사들이 수사한 가장 황당한 사건 17가지를 추려 공개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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