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시대>17.겉도는 교육자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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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울시교육청 공무원들이 행정감사준비 마무리에 분주했던 92년11월24일 오전.지방자치교육이 출범한지 1년여만에 서울시의회의 두번째 감사가 예정됐던 날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날 시교육청 9층에 마련된 감사장을 차지한 것은 시의회의원이 아닌 서울시교육위원들이었다.시교위원들은 자신들의 권역(權域)인 시교육청에 대한 시의회의 감사는 시교위를 무력화 시키는 월권행위라며 임시운영위원회 개회를 내 세워 감사장을 점거하고 회의장 책상 위에 놓여있던 시의원 명패를 들어내는등 실력행사에 나섰다.
지난해 10월16일 전남도교육청은 도의회의 추경예산안 삭감에반발,이례적으로「우리 청의 입장」이란 유인물을 내놓았다.
도교육청은 추경예산 1백97억1천3백여만원중 무려 61.3%에 달하는 1백20억8천9백여만원을 도의회가 삭감하자『교육발전을 저해하는 어처구니 없는 처사』라며 분개하고 나선 것.
실제로 삭감된 예산에는 순천 연향국교등 6개 국.중교 신설및이설 시설비 97억9천1백여만원과 실업계고 체제개혁 추진비 9억8천5백여만원등이 포함돼 있어 교육청과 교육위가 추진하려던 교육체제개편 계획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도교육위는『교육예산이란 장기계획에 따라 투자의 우선순위와 규모가 정해지고 있음에도 지방의회나 의원이 정치적.단기적 안목으로 이의 우선순위를 뒤바꾸고 있다』고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93년 예산중 서울 K상고 체육관 신축비,경기 C종합고 개축비,그리고 광주의 K국교 보수비등 예산안 편성이 지방의회나 의원들의 입김으로 당초의 실행 우선순위가 뒤바뀐 사례로 꼽힌다.
『교육청으로서는 지방의회나 교육위 모두가「상전」인데 양대기관의 힘겨루기는 교육청의 행정력 소모 뿐 아니라 일선 교육현장의교사.학부모.학생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교육청 某간부는 자치교육 출범부터 시.도의회와 시.도교육위원회간의 갈등이 잉태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지방자치교육은 91년3월8일 제정된 지방교육자치법(이하 교육자치법)에 근거,같은해 9월2일 서울.부산등 13개 시.도 교육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시작됐다.
문제는 교육자치법(제3조및 제13조)에서는 교육위원회를「심의.의결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지방자치법은 집행기관의 장(제6장)에서 교육.학예에 관한 사무분장 기관을 별도로 설치하도록 규정,교육위원회의 지위를「합의제 집행기관」으 로 규정하고있는 데 있다.
법리적 모순은 내무부와 교육부의 입장차이를 낳고 이에 앞서 지방의회와 지방교육위원회,그리고 교육청등 관련부처및 기관들이 저마다의 해석을 하는게 가능토록 하고 있다.
그래서『중앙정부가 교육부를 통해 지방교육에 관여하는 정도는 교육자치란 표현이 무색할 지경으로 심하다』는 교육청의 불만도 터져 나온다.
실제로 시.도교육청 공무원중 총무.감사.재무.행정과장등 주요보직 서기관급이상과 교육행정의 핵심요원인 장학관직은 지방공무원이 아닌 국가공무원으로 중앙정부가 인사권을 가지고 있고 교원의인사규정등도 교육감의 재량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 다.
결국 92년4월 전국 2백24명 교육위원들은 시.도의회의 의결을 거치게 되어있는 절차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을 침해한다는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법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교육위원 전원이 사퇴하겠다며 93년10월 국회에 지방 자치교육법 개정 청원을 내기에 이르렀다.
시.도의회와 내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교육위등의 주장은 교육자치를 교원(敎員)자치나 교육전문가 자치로 오해함으로써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장과의 협조관계를 교육의 예속으로 치부하고 있다.그러나 교육위의 분리.독립주장은 오히려 주민의 지배를 기본원리로 하는 지방자치 원칙 에 위반된다』는 것이 반론의 개요.
이같은 주장은 장기적으로는 교육위-지방의회-단체장의 연계를 끊기보다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장의 지역교육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강화시켜 지역교육에 대한 재정지원확대등을 이끌어 내야만 교육 수혜자인 주민에게 충실한 제도가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교육전문가들은 그래서 우리나라 지방자치교육의 나아갈 목표를 장.단기로 나누어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정치적 격변기마다 교육제도의 개정이 정권유지수단으로 이용당한전례에 비추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는 명제아래 단기적으로는 지방의회와의 분리를,지방자치제도가 일정 궤도에 오른 이후 장기적으로는 충 분한 재원투자와 주민참여를 이끌어 낸다는 차원에서의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특별취재팀=權寧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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