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주희정 “나의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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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희정이 KTF 수비진의 압박수비를 피해 점프하며 패스를 시도하고 있다. [안양=뉴시스]

 프로농구 KT&G의 리더인 주희정(30)은 스무살이던 1997년 고려대를 중퇴하고 프로에 왔다.

 세 살 때부터 홀로 자신을 키운 할머니가 간경화로 몸져 눕자 입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식당에서 일하며 키운 손자가 고려대에 들어갔을 때 그렇게 기뻐했던 할머니 때문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주희정은 98년 나래(현 동부) 유니폼을 입고 신인왕에 올랐지만 시즌이 끝나자마자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나래는 주희정이 필요없었다. 신인 신기성 때문이었다.

 주희정은 고려대에서도 1년 선배 신기성 때문에 벤치에 앉아 있었고 먼저 온 프로에서도 자리를 빼앗겼다.

 주희정이 최고 가드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상한 일도 아니다. 주희정은 이후로도 강동희·이상민·신기성·김승현·양동근에 반 발짝 뒤지는 선수로 꼽혔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23일 주희정은 안양에서 신기성이 이끄는 KTF를 87-76으로 꺾었다. KTF전 3전 전승이다.

 11득점에 9어시스트를 한 주희정은 신기성(15득점·2어시스트)에게 크게 앞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포인트가드의 가장 큰 덕목인 안정성에선 차이가 분명했다. 주희정은 어시스트와 실책의 비율이 9-2(4.50)으로 신기성(2-3, 0.66)과 상대가 안 됐다. 주희정은 올 시즌 KTF와의 3경기 모두 신기성에게 이렇게 앞섰고 모두 이겼다.

 신기성뿐 아니다. 양동근이 군대에 가고 김승현이 다쳐 경기에 못 나오지만 그들이 있더라도 올 시즌 주희정에게 앞설지 장담할 수 없다. 주희정은 시즌 평균 12.9득점, 4.6리바운드, 8.2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강동희나 이상민의 전성기 수치와 비슷하다. 어시스트와 턴오버의 비율은 5-1에 가깝다. 프로농구 사상 가장 안정된 야전사령관으로 불러도 무방하다.

 주희정의 성장은 강한 체력 덕분이다. 강철 같은 체력에 프로농구에서 유일하게 500경기를 넘긴 관록이 녹아 들면서 경기 운영능력도 크게 향상됐다. 팀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가장 많이 하는 선수가 주희정이다. 약점이던 외곽슛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올 시즌 주희정의 3점슛 성공률은 42.0%다. 전문 슈터 못지 않다. 워낙 빠르고 돌파도 좋은 데다 외곽포까지 좋으니 올해 주희정을 막기는 힘들다.

안양=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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