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토종 MBA "유학파 따라잡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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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회기동 한국과학기술원(KAIST) MBA 과정 학생들이 영어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상선 기자]

1년 과정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MBA) 코스를 이달 말 졸업하는 유형준(35)씨. 그는 내년 1월 글로벌 에너지 전문기업인 BP에서 근무하기 위해 영국으로 간다. 올 4월 아시아 지역에서 현지 채용에 나선 BP가 KAIST를 방문했을 때 기회를 잡았다. KAIST에서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코닝·한국IBM에서 10년간 근무했던 유씨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경영 지식이 필요해 MBA 과정에 입학했다”며 “외국 선진 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꿈을 이뤄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김진회(36) 과장은 올 8월 성균관대 MBA(SKK GSB) 코스를 마친 뒤 은행 내 투자은행(IB) 분야로 옮겼다. 그는 “은행에 들어간 뒤 주로 영업점에서 근무했는데 MBA 공부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는 ‘한국형 MBA’가 인기다. 1~2년의 교육과정을 마치면 연봉도 높아지고 원하는 직장이나 분야에서 일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비용은 적게 들고 효과는 높아=몇 년 전만 해도 MBA 하면 와튼·캘로그 스쿨 등 해외 대학을 먼저 떠올렸다. 1996년부터 KAIST·한국개발연구원(KDI) 등 6곳에서 MBA 학위 과정을 운영했지만 공인 기준이 없었다. 지난해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2005년 말 교육인적자원부가 한국형 MBA 사업을 시작하면서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11개 대학이 인가를 받았다. 학교 선택의 폭이 넓어졌을 뿐 아니라 교수·학점 등에 대한 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2년 과정뿐 아니라 1년을 네 개 학기로 나눠 단기간에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과정도 생겼다. 정승화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은 “국내 기업은 물론 외국 기업 주재원들에게도 인기”라고 말했다.

 한국형 MBA는 비용이 적게 든다. 등록금은 3000만~4000만원 수준. 2년간 체제비를 포함해 적어도 2억원이 드는 해외 MBA와 비교하면 생활비를 감안해도 3분의 1 수준이다. 이에 비해 졸업 후 취업이 잘되고 연봉도 확 오른다. KAIST 테크노MBA 과정 졸업생들의 최근 3년간 취업률은 98%에 달한다. 올 8월 졸업생을 처음 배출한 서울대 글로벌MBA의 경우 평균 연봉이 3800만원에서 6100만원으로 60% 이상 올랐다. 연세대 MBA를 마치고 올 상반기 금융권으로 전직한 이유진씨는 “연봉이 50% 이상 올랐고 일하는 분야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MBA(SKK GSB) 과정을 담당하는 조화연 씨는 “기업체에서 해외 MBA를 더 인정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상은 하버드대를 비롯한 상위 30개교 정도에 불과하다”며 “한국형 MBA가 비용이나 기간 면에서 효율적”이라고 했다.

 ◆국내파 MBA 평판을 높여야=한국형 MBA 스쿨은 아시아 지역 경영자 교육 중심지를 노린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MBA 졸업생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지만 고급 인력은 부족한 편이기 때문이다. 한국형 MBA는 영어 강좌와 외국인 교수를 늘리고 있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또 국내외 기업에 대한 사례 연구가 축적돼 있지 않아 외국 MBA와 구별되는 특화 프로그램이 적다. 게다가 역사가 일천해 졸업생 인적 네트워크가 취약한 편이다.

김성희 KAIST 교수는 “해외에서도 인정받으려면 졸업생들이 뛰어난 성과를 거둬야 한다”며 “국제적 평판을 높인다면 수년 후에는 한국이 우수한 경영인을 배출하는 동북아 MBA 허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글=김창우·한애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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