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여 쇼를 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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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15면

발 빠르다. 17대 대통령 선거의 폭풍이 가시기도 전에 다른 쪽에선 기발한 토론회가 열렸다. ‘남성 엔터테인먼트 케이블채널’을 표방하는 XTM이 21일(금) 오후 11시에 편성한 ‘생방송 젊은 토론, 설전’. 기호 8번 허경영 후보가 총재로 있는 경제공화당의 기획과장·총무차장 등이 패널로 참가해 시민들과 함께 ‘허경영 후보 공약의 모든 것’을 논했다. 생방송 중 허 후보와 전화 연결까지 시도했다.

‘허본좌’에 열광하는 시청자

결혼수당 1억원, 출산수당 3000만원, 유엔본부의 판문점 이전 등 엉뚱한 공약들이건만 네티즌은 열광했다. 허 후보의 대선 관련 동영상은 유력 후보들을 제치고 플레이 수 1위에 올랐고, ‘허본좌’라는 애칭과 함께 ‘허경영 태왕사신기’ 등 팬카페가 줄줄이 생겼다. 수능 폐지 공약에 초·중·고 학생들이 열광해 투표권 있는 부모들을 부추겼다는 얘기도 들린다. ‘오프라인’에서도 10만 표 가까운 지지를 받았으니 ‘허본좌 신드롬’이 허상만은 아니다.

촉수 예민한 방송가가 이를 놓칠 리 없다. 지상파 중에선 MBC가 적극적이다. 19일 대선 개표방송 때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와 ‘무한도전’의 포맷·출연진을 빌려 화제를 모았던 MBC는 내친김에 ‘무릎팍도사’에 허 후보의 출연을 타진 중이다. 대선공약토론 때는 군소후보로서 ‘마이너리그’에서 토론한 허 후보지만, 선거가 끝난 뒤 여느 후보들이 눈물 흘리는 상황에서 몸값이 외려 뛴다.

이번 대선에선 시사풍자 코미디가 별반 특색을 드러내지 못했다. ‘허본좌 신드롬’은 정치인이 스스로를 패러디하고 코미디화한 최초의 사례로 기억될 듯싶다. 공약의 실천 가능성을 떠나 그것이 지향하는 유쾌한 판타지를 즐기는 유권자들. 어차피 정치가 ‘쇼’라면 제대로 즐겁게 ‘쇼를 하라’는 외침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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