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도저" 치밀하게 준비한 뒤 밀어붙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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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 이명박, 운전석에 앉다'. 청와대 새 주인의 윤곽이 거의 드러난 19일 밤 한 외신이 대선 관련 기사를 타전하면서 붙인 제목이다. 하지만 정작 이 당선자는 '컴도저'란 애칭을 더 좋아한다. 치밀함(컴퓨터)과 추진력(불도저)을 합친 말이다. 이 당선자와 동고동락했던 현대건설 임직원과 고려대 61학번 동창들은 '이명박의 DNA'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이래서 '컴도저'다='현대맨'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그의 장점이 있다. 바로 남다른 판단력과 상황 장악력이다. 1987년 말 스리랑카 댐 공사 때의 일.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은 "공사 장비를 구하지 못해 절쩔매고 있을 무렵 이명박 당시 사장이 '함께 컨소시엄에 참여한 일본 업체에 (우리가) 수주한 일을 맡겨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장비가 넉넉했던 일본 건설사들을 아예 현대건설의 '하청업체'로 돌려 쓰는 작전. 그의 역발상 덕에 현대는 장비를 구입하는 부담 없이 공사 '관리' 만으로 큰돈을 벌었다. 현장 소장을 맡았던 이 전 사장은 "이 당선자 덕분에 보너스 5000만원을 받았다"며 웃었다. 대학 동기인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친구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 적도 많다"고 덧붙였다.

◆'강심장' MB=어충조 삼일회계법인 고문은 이 당선자를 '강심장'으로 기억한다. 어 고문은 "1980년 신군부가 '중화학공업 투자조정' 정책을 내세워 '현대자동차를 포기하라'고 윽박질렀지만 이 당선자는 끝까지 '노(NO)'를 외쳤다"고 회고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이 당선자에게 도장을 맡길 정도로 체념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신군부에 반기를 든 건 이뿐이 아니다. 83년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이 당선자를 호출했다. 부실 기업이었던 K사의 인수를 '지시'하기 위해서다. 그는 '청와대 지시로 인수했다고 소문나면 정경 유착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신군부를 설득해 끝내 두 손 들게 만들었다. K사는 며칠 뒤 다른 그룹에 편입됐다. 어 고문은 "현대차 건으로 국보위에 끌려갔다 돌아온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이 당선자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MB 라인'은 없다=국회의원 시절 이 당선자는 여의도 정가에서 '인색한 사람'이란 평을 종종 들었다. 이런 '오해'는 현대에 근무할 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 고문은 "현대 시절에도 줄 세우기와는 벽을 쌓고 살았다"며 "이 때문에 학교나 고향 선후배들에겐 별 인기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고려대 동기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은 생각이 좀 다르다. 천 회장은 "'주변 사람을 잘 챙기지 않는 스타일'이란 말을 이 당선자가 듣기도 하지만 그건 기대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라고 말했다. 천 회장은 '연분'보다 '일'을 중시하는 이 당선자의 스타일이 국정 운영엔 훨씬 적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내흔 회장도 "연분이 있는 쪽에 특혜를 줄 사람은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체력보다 강한 정신력=국립현충원 참배→내외신 기자회견→선대위 해단식→주한 외국 대사들과의 면담→선영(先塋) 방문→부시 미국 대통령과 통화. 당선 다음날인 20일의 동선이다. 이를 두고 '역시 강철 체력'이란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이양섭 전 현대자동차 사장은 "체력보다 정신력이 더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당선자가 60년대 후반 태국 근무를 마친 뒤 귀국해 가진 술자리 일화를 공개했다. "주량이 소주 한 병인 이 당선자와 나는 25도짜리 소주를 10병이나 비웠다. 회사 선배인 나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안 보이려 이를 악문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음식점을 나서면서 이 당선자는 결국 정신을 놓아버렸다. 이 당선자는 이양섭 당시 부장의 등에 업혀 서울 회기동 형님(이상득 국회 부회장) 집에 '배달'됐다고 한다.

표재용.심재우.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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