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맞수>한국유리.(주)금강-창업주.오너경영인 비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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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유리와 금강 창업주는 청년시절부터 사업을 해왔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사업이력이나 스타일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유리 창업주는 최태섭(崔泰涉).이봉수(李奉守).故김치복(金致福)씨등 3인.이들은 유엔한국재건단(UNKRA)지원으로 세워진 인천판유리공장을 57년1월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유리사업을시작한다.
그러나 이봉수씨와 故김치복씨가 다른 사업에 더 관심을 보여 현명예회장인 최태섭씨가 한국유리를 사실상 키워낸 창업주로 꼽힌다.그렇지만 동업정신을 살리다 보니 자연 의사결정이 느리고 보수적인 기업풍토를 길러온 결과를 낳았다.
崔명예회장(84)은 1910년 평북정주 농가에서 태어났다.첫사업인 정미업 실패후 38년 만주로 건너가 세탁비누.양초.식용유등으로 큰 돈을 벌었다.
만주에서 해방을 맞았지만 재산을 빼앗겨 무일푼 신세가 된 그는 가족을 데리고 월남,군납.원양어업등으로 돈을 번다.이어 한국유리 창업에 뛰어들어 경영을 주도해왔다.경영 일선에서 물러난것은 82년으로 장남 최영증(崔永增)씨가 홍대식 (洪大植)씨에이어 사장에 오른 뒤다.특히 오산학교 학생시절 체득한 독립정신과 기독교신앙이 남달라 회사경영에서도 그같은 정신이 물씬 풍기게 했다.
금강그룹 정상영(鄭相永.58)회장은 3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동국대 재학중이던 59년(23세)금강의 전신인 금강스레트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사업에 뛰어든다.
당시 鄭회장을 지켜본 사람들은 『한창 놀 젊은 나이에 공장 구석에서 잠자고 새벽부터 일하는 독종』이라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정주영(鄭周永)현대명예회장의 막내동생이기도 한 그는 이 점 때문에『맏형이 하는 현대 덕분에 회사를 키웠다 』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74년에는 페인트회사인 고려화학을 세워 이를 국내최대 페인트 업체로 일궈냈다.
특히 한국유리와 정부가 한결같이 공급과잉을 들고 나오는데 굴하지 않고 판유리사업에 신규진출한 것은 鄭씨 일가 특유의 뚝심이 발휘된 것으로 꼽힌다.그는 89년 금강종합건설.금강레저를 잇따라 세우는등 경영확장에도 계속 솜씨를 보이고 있다.
〈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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