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매각, 산은 수술 … ‘M&A 태풍’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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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새 정부가 들어서면 금융 지도가 바뀔 것이다. 은행은 물론 보험·증권사도 순위 바뀜과 이합집산이 크게 일어날 것이다.” 20일 시중은행의 한 고위 간부는 “금융회사 전략팀마다 벌써 ‘금융빅뱅’을 대비한 전략 마련에 들어갔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우선 국책은행을 민영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산업자본의 은행 인수를 막는 금산분리도 철폐할 방침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우리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매각, 기업·산업은행 민영화 등 노무현 정부 내내 미뤄졌던 인수합병(M&A)이 새 정부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이들은 은행은 물론 증권·캐피탈회사 등 각종 금융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어 M&A에 따른 금융권 파급 효과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 ‘3강 1중 3약’구도 바뀌나=은행가의 관심은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에게 쏠리고 있다. 김 회장은 대통령 당선자와 대학 동기(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새 정부 들어 하나금융은 M&A 대전의 ‘다크호스’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진작부터 하나금융은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를 준비해 왔다. 하나 측 고위 관계자들은 “새 매물이 나오는 대로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란 얘기를 사석에서 공공연히 흘리기도 했다.

현재 시중은행은 국민(자산 규모 227조원)·우리(213조원)·신한(202조원)은행의 3강 체제다. 이들 세 은행은 모두 외환위기 후 M&A를 통해 몸집을 불리며 선두권으로 도약했다. 자산 규모 4위로 ‘1중’인 하나은행(132조원)은 외환은행 인수 실패로 3강에 올라서지 못 했다고 보고 있다. 하나은행이 다음 정권에서의 인수전을 벼르고 있는 이유다.

국민은행의 행보도 눈여겨봐야 한다. 국민은행은 현재 진행 중인 HSBC은행의 외환은행 인수가 무산되면 다시 인수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기업은행이 매물로 나온다면 역시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반면 3강 중 하나인 신한은행은 새 정권에서 벌어질 M&A 대전에서 큰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모회사인 신한지주가 조흥은행과 LG카드 인수 때 ‘실탄(상환해야 할 금액 7조6000억원)’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산업은행(104조원)의 IB(투자은행) 부문을 따로 떼어서 매각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IB 부문 강화에 매달리고 있는 신한 측으로선 어떻게든 국내 최고인 산업은행 IB 부분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의 모회사인 우리금융도 정부의 보유 지분 매각이 예상돼 대형 M&A에는 쉽게 뛰어들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계 관계자는 “하나와 국민, 어느 쪽이 큰 은행을 인수하느냐가 열쇠”라며 “인수전 결과에 따라 새 정부의 은행계 판도는 ‘4강 3약’ 또는 ‘1강 3중 3약’ 구도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업계도 개편 회오리 일 듯=이 당선자는 ‘서민금융 활성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서민금융은 사실상 대부업체 중심의 고금리 대출 시장이 주다. 그런 만큼 은행들의 대부업 진출을 적극적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은행들도 준비를 마친 상태다.

국민은행은 이미 내년 중 소비자금융 자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우리금융도 올 8월 여신전문회사인 한미캐피탈(현 우리파이낸셜)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금융 업무를 늘려갈 계획이다. 신한지주도 자회사인 신한캐피탈을 통해 소비자금융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은행들이 대부업에 속속 진출하면 시장은 은행계와 일본계 대부업체로 일단 양분될 전망이다. 여기에 저축은행들도 가세하면 대부업 시장은 은행과 대형 대부 업체, 저축은행, 캐피털업체 간 경쟁이 격화되는 춘추전국시대를 맞게 된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서민금융 활성화 정책에 따라 유가증권 취급 등 업무 영역 확대, 지점 설치 기준 완화가 기대된다”며 “이를 통해 저축은행의 대부업 진출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금융 활성화를 통해 대형 대부업체는 명실상부한 ‘제도권 금융회사’로 발돋움할 수도 있다.

또 보험업계의 숙원이었던 생명보험사 상장도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성사될 전망이다. 생명보험사들은 상장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대형화와 종합금융화에 나서며 은행과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호생명이 1호 상장사로 유력시되는 가운데 교보·미래에셋생명이 1~2년 내 상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 상장은 또 한 차례 금융계의 지각 변동을 몰고 올 전망이다.

김창규·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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