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PT는 ‘첨단 IT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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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첨단 기술을 활용해 고객의 오감을 자극하는 프레젠테이션(PT) 기법이 각광받고 있다. 사진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올 초 세계가전전시회에서 선보인 ‘디지털 홈’ PT 장면.

11일 오전 서울시청 회의실. 서울시가 발주한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권을 놓고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이 열렸다. 참가 업체는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가 맞붙었지만 승부는 의외로 쉽게 갈렸다. 대림산업의 동영상 PT 자료가 참석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3차원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완공된 광장 모습을 화려하고 역동적인 동영상으로 펼쳐 보인 게 주효했다. 이 자료를 만든 PT 기획·제작 대행사 ‘굿디넷’의 조진영 대표는 “복잡한 그래프를 나열한 차트형 자료로 PT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특히 수십억원이 넘는 사업권이 걸린 경쟁 PT에선 첨단 정보통신(IT) 기법을 총동원해 오감을 자극하는 ‘감성 PT’가 대세”라고 말했다.

PT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각종 영상물이 범람하면서 설득 조의 단조로운 PT로는 고객을 감동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전용 보드에 메모를 하면 스크린에 그대로 전달되는 ‘펜 태블릿’, 키보드를 두드리는 대신 전자펜으로 화면에 글씨를 쓰면 되는 ‘태블릿 PC’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빔 포인트(PT를 할 때 쏴 주는 광선)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 단말기와 공중에서 사용 가능한 무선 마우스 등도 PT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과거 PT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미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워포인트’ 프로그램 대신 보다 자연스러운 동영상 연출이 가능한 미 매크로미디어의 ‘디렉터’나 ‘플래시’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음향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음원 선정과 성우 섭외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식과 2014년 겨울올림픽 유치 PT를 총지휘한 제일기획 김찬형 상무는 “요즘 PT는 이벤트에 가깝다”며 “3차원 입체 영상이나 가상 스튜디오 기법 등을 활용하는 일이 흔해졌다”고 말했다.

PT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획 전문가, 그래픽 디자이너, 3차원 애니메이션 전문가를 영입해 PT 전담 부서를 만드는 회사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PT를 중요시하던 광고업계뿐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으로 승부를 겨뤄야 하는 건설·시스템통합·미디어 업계 등이 PT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시스템 통합업체 삼성SDS의 경우는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투모로우 PT 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 대회에선 가상 현실 사이트 ‘세컨드 라이프’에 전용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그 내부 스크린에 자료를 띄운 뒤 미녀 아바타와 함께 회사의 비전을 설명하는 PT 방식까지 등장했다.

이 회사 이장환 제안전략팀장은 “냄새 분자 합성, 마이크로 로봇, 4차원 입체 영상 등 최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 PT가 등장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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