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94>4.산업-굵직한 사업싸고 재계 지각변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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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데올로기 싸움의 종말이후 세계가 갈수록 경제전쟁 양상을 띠어감에 따라 산업계는 올 한해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속에 보냈다. 굵직굵직한 이권의 향배를 놓고 대기업그룹간 경쟁이 어느해보다 치열했다.이동통신.중형항공기 주간사선정,승용차 신규진출,데이콤주식및 한국비료인수전,정유업계 시장쟁탈전등 굵직한 사업거리가 예년의 몇년치에 이를 정도였다.공정거래법 개정 ,사회간접자본 민자유치법 제정,공기업민영화 추진,대대적인 정부조직개편등을 둘러싸고 정부와 재계가 간간이 신경전도 벌였다.
특히 지난8월에 있었던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예고는 재계를 궁지로 몰아넣었다.경제기획원은 경제력 집중완화를 이유로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한도를 현행 순자산의 40%에서 25%로 줄이기로 한 것이다.
재계가 크게 반발하며 국회와 언론에 그 부당성을 호소하자 정부관리들은『문제가 있으면 정부에 먼저 건의해야지 국회에 가서 로비한다』고 언짢아했다.결국 개정안은 정부안대로 통과돼 내년부터 재계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됐다.
그런가하면 일부 대기업그룹 총수들은 법정에까지 서는 곤욕을 치러야만 했고 거평.나산등 일부 중견기업들의 약진은 화려한 스폿라이트를 받았다.올 벽두를 장식한 산업계 핫이슈는 제2이동통신 쟁탈전이었다.천신만고끝에 얻어낸 허가권을 지난 해 반납한 선경은 올해도 2通과의 인연은 별로 시원치가 못했다.정부가 업자선정권을 선경의 최종현(崔鍾賢)회장이 대표로 있는 전경련에 위임한 때문.
선경은 결국 2通을 포기했다.그러나 제1通(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함으로써 정보통신사업 진출의 꿈은 달성했다.
2通인수전은 포철과 코오롱으로 좁혀졌으나 과열경쟁으로 자칫 재계의 분열상마저 보일 정도였다.진통끝에 포철 15%,코오롱 14%라는 묘한 지분구성으로 전경련이 포철손을 들어주었지만 민영화대상인 공기업에 큰 이권을 넘겨줬다는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다. 4월말 닛산과의 기술제휴로 표면화된 삼성의 승용차진출은 정부의 신규진입정책에 대한 찬반양론을 격화시켰다.기존업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세계화정책에 힘입어 삼성은 12월 진출권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韓中 양국이 공동개발할 중형항공기 주관회사 선정을 둘러싼 대기업간 경쟁도 볼만했다.삼성항공.대한항공.대우중공업등 항공 3사는 그룹 차원의 쟁탈전을 벌였다.2년여 경쟁끝에 결국 업계 자율결정형태로 주관회사는 삼성항공으로 낙착됐다.정 유업계의 시장점유율 경쟁도 다른 어느 업종보다 치열했다.쌍용정유의 기습적인 유가인하작전은 업계의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촉발시켰다.결국 시장점유율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유가자율화를 내년으로 앞당기고 소비자에겐 이익을 돌렸다 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았다. 한국비료와 데이콤 경영권 인수전은 공기업민영화 대상중 재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한비는 삼성과 동부간에 한차례 유찰까지 빚어가며 격전을 벌였으나 연고가 있었던 삼성이 큰 액수로 응찰,차지했다.럭키금성은데이콤 경영권 확보를 위해 끈질긴 물밑 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기업민영화와 함께 재계판도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사회간접자본(SOC)투자에도 재계의 경쟁은 치열했다.
기업들의 세계화기지를 겨냥한 해외 투자와 신제품 개발도 전자.자동차업계를 중심으로 활발했다.삼성은 중국 톈진(天津).쓰조우,영국,멕시코등에 첨단 복합생산기지를 건설키로 했다.삼성전자는 포르투갈 반도체공장을 가동했고 금성사는 중국에 브라운관.VCR공장을 설립한데 이어 IBM과 컴퓨터운영체제 공동추진에 합의하는등 전략적 제휴에도 나섰다.
삼성전자는 2백56메가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개가를 올렸고 자동차업체들도 전기.가스자동차등 환경규제에 대비한 신차개발에 박차를 가했다.문민정부와 껄끄럽게 출발했던 현대그룹은 올해도 對정부관계가 그리 시원치는 못했다.정주영(鄭 周永)명예회장이 5월초 경영일선 은퇴를 선언하면서 출국하는등 화해제스처를썼지만 매듭을 푸는데는 역부족이었다.산업은행 설비자금대출.민항기제조허가.현대자동차 해외증권발행등 그룹의 굵직한 현안이 끝까지 풀리지 않았다.일관제철소 추진의사 도 물론 제대로 먹혀들지않고 말았다.
최원석(崔元碩)동아그룹회장.김우중(金宇中)대우그룹회장.김승연(金昇淵)한화그룹회장 등도 편치 않은 한해였다.崔회장은 몇년전한전 원자력발전소 건설공사 수주과정에서 뇌물을 준 사실이 느닷없이 불거져 나와 대우 金회장.삼성건설 박기석( 朴基錫)회장등과 함께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는 비운을 맛보았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성수대교 붕괴사건까지 터져 새 다리를 지어 헌납하겠다는궁여지책까지 발표해야만 했다.
외환관리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옥고를 치렀던 한화 金회장은 1월 출소후『근신차원에서 6개월간 경영 일선에서 떠나 있겠다』며훌쩍 해외로 떠났다 10월 그룹창립기념일을 계기로 경영에 복귀했다.포철은 경영진내분 때문에 김만제(金滿堤)회 장체제로 전격교체됐고 기소중지된채 해외를 떠돌던 박태준(朴泰俊)前회장은 모친상을 당해 귀국했으나 검찰조사를 받은 다음 신병치료를 이유로다시 출국했다.
중견기업중에는 거평이 대한중석을 인수한 것과 의류그룹인 나산이 영동백화점을 인수한 것등이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반면 봉명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일진다이아몬드는 미국과의 특허송사에휘말려 고생했다.구조적인 자금난과 인력및 기술부 족등의 문제들은 중소기업계가 올해도 제대로 풀지 못한채 숙제로 넘겼다.
〈趙鏞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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