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의 변신도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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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판화는 복제예술이다. 이 점이 판화의 가능성이자 한계였다. 인쇄 수단으로, 화가들의 장르 실험의 단편으로, 초보 컬렉터들이 연습삼아 구입하는 작품 정도로 치부됐다. 활자와 인쇄대국인 우리나라에선 판화가 왕실의 인쇄 프로젝트로 백성 계몽에 일조했다. 미술사 연구가들은 ‘현대판화’가 독립된 행보를 시작한 것은 1950년대로 본다. 홀대받는 판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전시가 경기도 과천의 두 미술관서 열린다. 우리 근현대 판화를 연대기적으로 모은 대규모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현대판화 1958~2008’은 한국판화협회가 결성되고, 이항성씨의 첫 석판화 개인전이 열린 1958년부터 최근까지의 현대 판화계를 총 결산했다. 133명 작가의 400여점 작품이 모였다.

1부는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를 정리했다. 60년대 당시 첨단 유럽 양식을 판화에 적용한 윤명로와 배륭, 68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 창설, 70년대 한운성, 송번수 등의 다양한 판법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부분은 90년대 이후의 기법과 표현법의 확장 등 판화의 현재와 미래를 다룬 2부다. 찍는다는 의미의 ‘프린트(print)’가 일본을 통해 판화(版畵)로 번역돼 수입되면서 판화는 그동안 평면적 종이 작업이란 틀에 갇혀 지냈다. 하지만 오늘날의 판화는 사진전사, 레이저커팅, 캐스팅 등 다양한 기법으로 확장되고 있다. 동판에 새겨 찍어낸 김영훈의 ‘Tell Me The Truth’ 뿐 아니라 같은 거푸집서 찍어낸 길이 240cm의 포크 31개를 설치한 최미아의 ‘구조장비’도 판화다. 판화가 앞으로도 그 개념과 방법을 확장해갈 것임을 한눈에 보여준다. 내년 1월 27일까지 열린다. 02-2188-6114

#인근의 과천 제비울미술관에서는 우리 목판화의 과거에 주목했다. 22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열리는 ‘출판미술로 본 한국 근·현대 목판화 1883~2007’이다.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목판화라 해서 ‘나무거울’이란 부제를 붙였다. 전시는 1883년 『한성순보』의 삽화인 ‘지구전도’, 양기훈이 판각한 『대한매일신보』의 ‘혈죽도’(1906) 등 개화기 신문 목판화로 시작해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80년대 민중미술, 요즘 전래동화에 실리는 판화가의 것까지 책자에 실린 판화 550여점을 그러모았다.

기획자 김진하 씨는 “당시 출판 작업을 화가들이 도맡으면서 동시대의 문제를 풀어나간 점이 의미있다”고 말했다. 전시와 함께 한국 목판화의 뿌리찾기 작업으로 『출판미술로 본 한국 근·현대목판화, 1883~2007: 나무거울』(김진하 엮음, 우리미술연구소·품 펴냄)도 펴냈다. 02-3679-0011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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