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국방 한국 '잃어버린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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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8일 오전 7시5분.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섬의 미 해군 미사일 발사장에서 한 발의 탄도미사일이 발사됐다.

수백km 떨어진 태평양 북측 해역에서 대기하던 일본의 해상자위대 이지스함 '곤고(金剛)'의 레이더가 즉각 미사일 추적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4분 후 곤고에서 요격미사일 SM3가 발사됐다. 그리고 다시 3분 후.

'가상의 적' 역할을 맡은 미군이 쏜 미사일은 일본 이지스함에서 쏘아 올린 SM3에 의해 고도 100km 이상의 상공에서 정확히 요격됐다. 이날 미국과 일본의 미사일 요격 공동실험에 소요된 시간은 총 7분. 그러나 그것은 무려 10년간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었다. 또 미국과 일본의 끈끈한 동맹체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카우아이섬의 미사일 발사장에서 모니터를 통해 SM3가 표적 미사일에 접근해 명중하는 모습을 적외선 카메라로 지켜보던 일본 방위성의 에토 아키나리 부대신과 미 국방부 관계자들은 손을 잡고 환호성을 질렀다.

미군을 제외하고 SM3에 의한 요격 실험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은 이번 실험에서 북한이 보유한 중거리 탄도미사일 '노동(사정거리 1300km)'을 상정했다. 그래서 표적 미사일도 추진 부분과 탄도 부분이 분리되는 '노동형'을 택했다. 비행속도가 마하 10이나 되기 때문에 분리가 안 되는 '스커드 형'에 비해 요격하기 더 어렵다.

이날 해상자위대의 요격 실험 성공은 일본의 요격 능력이 미국에 이어 세계 정상급이 됐음을 보여줬다.

1998년 8월 북한의 '대포동 1호'가 일본 열도를 가로질러 날아갔을 때 일본은 놀라기보다 착실한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겼다. 미국과의 공동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구축하며 10년 동안 꾸준하고 집요하게 개발과 연습을 거듭했다. 미국으로부터 MD 참여를 권유 받았던 한국 정부가 "북한과 중국을 자극하지 않겠느냐"며 이상론을 펴는 사이 일본의 MD 전략은 실리 위주로 착착 진행됐다. 지상배치형 요격미사일(PAC3)도 이미 실전 배치가 완료됐다. 미사일은 아예 일본 업체인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이 라이선스로 생산한다. 10년 사이에 이미 완벽한 기술 이전까지 이뤄진 것이다.

올 5월 한국의 이지스함 1호 '세종대왕'이 진수됐다. 하지만 SM3 운용 능력은 없다. '나중에 SM3 사서 달면 되지'라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일본의 경기 추락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해왔다. 이제 동북아의 전력 균형에서 한국이 거꾸로 그 소리를 듣게 됐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