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대통령 선거일 아침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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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0여 년 전 독일발 한국행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50대 독일인 승객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독일 기업의 기술자로서 한국의 합작회사에 파견 근무한 지 2년가량 되었다는 이 독일인은 한국인들을 가리켜 ‘겔라센’하다고 표현했다. 그 말은 각종 제스처를 통해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서양 사람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밖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공동체적 삶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에 두드러지는 특징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자기주장이나 권리의식이 강한 서양 사람들은 개인의 권리나 이익이 침해받는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개인적 피해와 희생이 따르는 상황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겔라센’이라는 표현은 한국인들에 대한 하나의 찬사였다. 한국인들은 집단이 관련된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개인적 이해관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인간관계를 대범하고 관대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었다.

한국인들이 ‘겔라센’하다는 말은 인상적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 말을 이따금 되새기며 공감을 느낄 때가 많다. 한국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서는 개인보다 가족이나 직장 등 집단을 우선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희생도 감수하는 경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겔라센’하다는 찬사에 회의를 느끼는 적도 종종 있다. 그것은 주로 한국의 정치 현실을 생각할 때다. 한국의 정치와 관련해 담담함이나 초연함, 체념이나 관용을 연상하기는 어렵다. 그것이 시사하는 것은 오히려 집착과 열망이다.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마다 ‘재수’ ‘삼수’ ‘사수’ 등으로 횟수를 거듭하며 그야말로 ‘불굴의 의지’로 도전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그렇다. 권력을 잡지 못한 ‘현역’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권력을 누려 본 ‘전직’까지 선거에 끼어들어 줄서기와 편 가르기에 합류하고 앞장서는 현상도 그렇다. 권력에 대한 의지는 정치인에게 불가결한 요소라 할지 모르나 때에 맞춰 깨끗이 단념하고 스스로 물러서는 정치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겔라센’이라는 찬사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정치에 관한 한 국민들 역시 평정이나 관용과는 거리가 멀다. 세월이 흘러도 선거만 하면 여전히 지역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상이나 ‘사랑’의 이름으로 정치활동을 후원한다는 모임들이 ‘사랑’이 아니라 ‘증오’를 전파하는 현상을 보면 그렇다.

되돌아보면 지난 20여 년간 민주화 과정을 거쳤지만 제도나 절차와는 달리 정치 문화의 수준에서는 나아진 것이 별로 없다. 정치를 이해관계의 조정이라기보다는 세계관과 이념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은 여전하다. 그리하여 다양성에 가치를 두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기보다는 특정한 가치를 절대화하고 이를 잣대로 선과 악, 적과 동지를 구분한다. 그러니 관용과 타협 대신 독선과 사생결단이 대세를 이룬다. 한국의 정치 현실은 ‘겔라센’하다는 찬사와는 영 딴판인 것이다.
 
오늘은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누구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며, 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인가가 오늘 우리 국민의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오래전 벽안의 한 이방인이 한국인들에게 던진 찬사를 소개하는 것이 이 관심사에 얼마나 부합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한번쯤 음미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모두 ‘겔라센’한 마음으로 오늘의 대사에 임할 법하다. 그리하여 그가 유권자라면 지연 대신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잣대로 투표할 것이다. 그가 오늘의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자라면 흔연히 패배를 인정하고 체념의 미덕을 따를 것이다. 그가 승리한 당선자라면 사심 없이 초연하게 오로지 국리민복을 위해 헌신할 각오를 다질 것이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안병직 서울대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