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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라의KISSABOOK] “산타”라고 그의 이름 부를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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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언어는 상징과 은유라는 두 가지 마법을 가지고 있다. 구태여 특정 사물과 관념을 일일이 지칭하지 않아도 이 강력한 마법을 통해 문학은 많은 말을 한다. 그래서 필립 클로델은 소설 『회색 영혼』에서 “우리가 꽃에 대해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아니, 내 말은 우리가 꽃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서도, -인간이니 운명이니 죽음, 종말, 상실 따위의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고도- 인생사를 논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고 한 것이리라.

일 년에 한 번의 만남만 허락되는 견우직녀처럼 겨울 한때 반짝 인기로 일 년을 버텨야 하는 고독한 산타! 오늘은 프란시스 처치의 『산타클로스가 정말 있나요?』(비비아이들)를 통해 산타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을 발견해보자. 장영희 교수의 번역과 김점선 화백의 그림이라는 환상의 하모니 덕분일까. 매년 재활용되는 구식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 책을 찬찬히 읽다 보면 산타 덕분에 또 다른 상념에 잠기게 된다. 북풍한파 속에서도 어김없이 제 날짜에 나를 찾아오는 산타를 믿고 사는 이라면, 내 꿈 또한 시련풍파 속에서도 결코 스러지지 않고 무르익어 내 빨간 양말 속에 기다리던 선물을 살포시 넣어줄 거라고 믿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작가는 아이에게 산타의 존재 여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는 어느새 그의 따뜻한 글 속에서 생의 가장 큰 선물인 꿈,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마는 꿈의 힘을 발견하고 믿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근사한 상징의 마법을 걸고 있는 산타의 실존을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으리라.
 
신시아 라일런트의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보물창고)는 김춘수의 시 ‘꽃’을 떠올리게 한다.『어린왕자』의 사랑스러운 장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만큼 상징이 멋지게 활용된 작품이다.
 
홀로 남겨지는 게 두려워 일찍 작별을 고할 것 같은 상대에겐 절대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 할머니. 누구는 고독을, 누구는 친밀감을, 또 다른 이는 관계를, 그리고 어떤 이는 이름에서 존재의 가치를 느낄 터. 그 넉넉한 해석의 자유가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아 있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읽노라면,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얼마나 코끝 찡한 일상의 행복인지 절로 깨우치게 될 것이다.
 
대상 연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 더 소중한 선물이 숨어 있음을 배워가는 7세 이상의 어린이와 아이의 이름을 짓던 행복한 순간을 보듬고 사는 엄마들.

임사라 <동화작가> romans8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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