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를찾아서>15.니체 그는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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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4세로부터 이름을 딴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1844년 도이치 뢰켄에서프로테스탄트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6세되던 해 아버지가 죽고 어린 시절을 어머니,누이동생 엘리자베스,그리고 이모 등 여성들에 둘러싸여 자란 그는 기억력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8세때부터 작곡을 하는 등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소년시절 명문학교에서 고전을 공부했고 성년이 되는 1864년이후에는 본과 라이프치히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으나 흥미를 붙이진 못했다.그는 대신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구한 쇼펜하워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크게 감명받 아 심취하기 시작했다.25세때 박사학위도 없이 유명한 고전어학자인 스승 리츨의 추천으로 고전어교수가 된 니체는 1870년 보불전쟁에 위생병으로 참전했다가 이질과 디프테리아로 건강을 크게 해치기도 했다. 바그너음악에 흠뻑 빠져있던 그는 1872년 바그너에게 바치기 위해 『음악의 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을 썼으나 주목받지 못했다.그러나 니체는 1876년 바그너가 바이로이트축제에서 발표한 오페라 『파르시팔(Parsifal)』이 그리 스적인모티브를 이용하고 국수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빠지자 그와 결별하게된다.이때부터 니체는 초기의 낭만주의.심미주의 경향에서 벗어나독창적인 사상을 개척한다.
1879년 건강 때문에 교수직을 그만둔 그는 지중해연안과 알프스에서 집필활동을 계속하면서 자연과학과 다윈의 진화론을 공부했는데,이것이 그의 후기 저작에서 나타나는 「부단히 생성.소멸하고 모순적이며 충동적인 권력」을 표현하는 「생( Leben)」이라는 개념과 「영겁회귀사상」으로 이어진다.1882년에는 21세의 매우 젊고 이지적인 미녀 루 살로메와 결혼하려다 연적의방해로 실패하고 1893년 『신은 죽었다』는 경구로 유명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 했다.
1888년 이후 그는 점차 정신착란증세를 보이는 가운데서도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경구로 가득차 있는 5편의 마지막 저작을 쓴다.
이 시기의 글에 대해 「정신병자의 넋두리」로 혹평하는 사람이있는 반면 사회적 억압에 대항하는 자유로운 정신이 깃들어 있는역작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1889년1월 이탈리아 토리노의길거리에서 쓰러진 뒤 정신적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그는 1900년8월25일 56세를 일기로 불우했던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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