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이명박 10% 내리고 내가 10% 오르면 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가 17일 서울 마포구 서울여고에서 1일 교사로 강의하고 있다. 오른쪽은 부인 민혜경씨. [사진=조용철 기자]

17일 아침 서울 홍은동 자택을 나서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진행된 TV토론에다 거듭된 강행군 탓이다. 유력 후보 중 가장 젊다(54세)는 그를 이 정도로 만드는 게 선거다.

신당 경선을 앞두고 8월에 빌린 그의 승합차도 어느새 헌 차가 됐다. 기자는 그와 동승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차 뒤쪽에는 7~8벌의 점퍼와 셔츠가 쌓여있다. 후보 자리 앞에는 '여성.노인 좋은 경제'등 연설 참고 자료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아침에 '이명박 동영상' 보도를 봤나.

"봤다. 오늘 하루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

-선거가 얼마 안 남았다. 뭐가 가장 아쉬운가.

"시간이 아쉽다. 시간이…. 기자회견을 하긴 해야 할 텐데."

정 후보는 말끝을 흐렸다.

12일까지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에 뒤처져 있는 상황이 마음에 계속 걸리는 듯했다. 그는 이명박 동영상 이야기를 이어갔다.

"진실은 결국 드러난다. 1972년 미국 대선에서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결국 거짓말(워터게이트 사건을 의미)로 물러났다. 미국 역사상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긴 것 아니냐. 진심으로 나라가 걱정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도 중요하지만 국민을 속이고 자신을 속인 사람이 대통령이란 게…. 그렇게 해서라도 나라가 잘 되면 좋다. 그러나 동서고금에 그런 경우가 없지 않나."

◆"소방방재청장은 3만 소방공무원 중에서 나와야"

녹번동 은평소방서를 찾은 정 후보는 '소방관의 기도'라는 부조 앞에서 순직한 소방관이 쓴 글을 소리내 읽었다. 소방관들과 악수하고 방화복을 입어본 그는 "여름엔 덥겠다"고 말한 뒤 "소방방재청장은 3만 소방공무원 중에서 나오는 것이 맞다. 대통령이 되면 맞교대 체제도 3교대로 확실히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몰려든 기자들은 또다시 이명박 후보에 대해 물었다. 정 후보는 자신이 돈을 요구한 동영상 CD 제작자와 직접 통화했다는 한나라당 주장에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런 일 없다는 것이다.

"완전 날조, 중상모략이다. 이런 게 정치라면 불행한 일이다. 우선 아무 말이나 해보는 것 아니냐. 그만큼 급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는 유권자에 대한 느낌을 털어놨다. 미안함과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국민의 위대한 힘으로 가난과 분단과 독재의 질곡을 벗어나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려 나한테 그런 역할이 주어졌는데, 내가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열지 못했다. 스스로 뼈저리게 반성한다. 지난 5년 동안 국민의 마음을 못 얻어 안타깝다."

"그래도 국민을 믿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가 모여 시대적 요구를 만들 것으로 믿는다. 지금의 시대적 요구는 기만이나 거짓을 용납하지 않을 거다."

◆"세금 문제, 전면 재검토하겠다"

정 후보가 1일 교사로 나선 염리동 서울여고에는 부인 민혜경씨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민씨는 "떨어져 있다가 같이 다니니까 의지가 되고 든든하니 좋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나는 (후보 지지율이) 일등이 아닌데 집사람은 일등이니 덕 좀 보려는가"라며 웃었다. 정 후보가 여고생들에게 민씨를 소개하며 "우연히 만난 최초의 여자친구가 이 사람인데 지금 같이 산다"고 하자 여학생들이 "와, 멋있다"고 호응했다.

정 후보는 강연에서 "여러분은 단군 이래 가능성이 가장 많은 세대다. 기차로 런던.파리.로마 배낭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하는 것이 대통령이 되고 싶은 이유"라고 말했다. 잠깐 짬을 내 또 물어봤다.

-TV토론에서 "대통령이 정말 되고 싶다"고 한 말을 들었다.

"내 간절함이 통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늘이 움직이는 건데 정말 대통령 한번 잘해보고 싶다. 국민이 원하는 선진국의 꿈을 이루게 해드리고 싶다."

-다른 후보에 비해 준비를 많이 했다고 보나.

"감히 준비돼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외교를 잘해야 사는 민족이다. 상대를 화나게 하지 않으면서 끈기 있게 설득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한다. 한반도 평화시대를 열고 경제영토를 확장하겠다. 경제 분야도 자신 있다. 나는 재래시장의 아들이다. 서민경제에 대해 누구보다 뜨거운 눈물과 애정이 나한테 있다. 글로벌시대에 맞는 문화콘텐트 강국 만들기와 국가 업그레이드에 대한 비전도 있다."

-노무현 정부 실정에 대한 동반책임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 정부의 정치 스타일, 인사 스타일을 확 바꾸겠다. 세금 문제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 특히 인사가 만사다. 드림팀으로 구성된 팀 코리아(Team Korea)를 만들겠다. 박태준.이홍구 전 총리,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김재철 전 무역협회장, 최상용 전 주일대사 등 여러분의 지혜와 조언을 구하겠다. 그래서 유능하고 선한 정부를 만들겠다."

◆"다른 후보에게 가는 표는 사표"

정 후보는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명박 후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군데로 모이자"며 '반부패 연대'를 주창했다.

경기도 유세로 넘어가면서 인터뷰는 이어졌다.

-이명박 후보를 이길 수 있다고 보나.

"결국 이명박과 정동영의 싸움이다. 이명박이 10% 떨어지고, 정동영이 10% 올라가면 되는 것 아니냐. 유권자들이 표를 몰아주시길 간곡히 호소하고 싶다."

-대선이 이틀 남은 상황에서 후보 단일화가 가능한가.

"안타깝고 아쉽다. 작은 이익 때문에 큰 뜻이 무너졌다. 결국 국민의 힘으로 사실상 단일화가 될 것으로 믿는다. (나 아닌) 다른 (범여권) 후보로 가는 산표(散票)는 결국 사표(死票)가 되는 것 아니냐."

◆"이명박은 특검법의 피의자일 뿐"

경기도 성남.의정부 유세에서 그는 이 후보에 대한 공격 수위를 더욱 높였다. 그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제스처는 커졌다. 정 후보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이명박 특검법'이 통과된 사실을 알리며 "이제 이명박씨는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특검법의 범죄 피의자일 뿐"이라며 "(이 후보가 도중 하차해) 또다시 선거를 치르는 일이 없으려면 모레 이 후보를 정리하고 미래로 가자"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범여권 후보 단일화만 이뤄지면 확실히 승리한다. 문국현.이인제 후보와 함께 공동정부 운영하자고 하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후보는 이회창 후보와의 연대 가능성도 제기했다. "(언론이) 이회창 후보도 연대 대상이 되느냐고 물었는데, 이명박 후보를 막기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한다. 이명박 후보는 국가 부도위기를 또 초래할 것이기에 국가 위기를 막기 위해 누구라도 함께할 수 있다"는 거였다.

글=김정욱.김경진 기자 , 사진=조용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