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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7가] 메이저리그 약물 조사 발표한다는데···

중앙일보

입력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인가요.

지난해 3월 출범한 메이저리그 '금지약물 조사위원회'의 발표가 13일로 임박했습니다. 버드 실릭 커미셔너가 지명한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이 수백만 달러의 예산을 써가며 근 2년간 품을 판 결과물이 마침내 햇빛을 보는 것입니다.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올해 초까지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자 미첼이 2005년과 2006년 청문회와 같은 법적 소환을 할 수 있는 의회나 정부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토로할 정도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실릭이 거느리고 있는 구단주들의 비협조 탓이었습니다. 그만큼 금지약물 조사위원회의 활동은 조사 주체자로서의 명백한 한계를 노정했습니다.

하지만 씨앗을 뿌린 만큼 거둬야 할 때는 왔고 이제 알곡이 됐든 쭉정이가 됐든 메이저리그는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아니 일필휘지로 최후의 방점을 찍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만 할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될까요. 유감스럽게도 '아니올시다' 입니다.

또다시 포즈(Pause)나 잠깐 잡고 지나가는 변죽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물론 익히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지난주 메이저리그가 약물 복용 선수들에게 내린 징계가 그 일단으로써 족합니다.

우선 메이저리그는 약물 복용 사실이 명백하게 입증된 호세 기옌(캔자스시티)과 제이 기본스(볼티모어)에 대해 내년 시즌 15경기 출장 정지를 내렸습니다. 이들의 약물복용 시기가 2003~4년에 이뤄졌다면서 강화된 형량(50경기)을 소급 적용하지 않고 당시 규정으로 갈음했습니다. 이는 선수 노조와 협의 끝에 이뤄진 일이었습니다.

또 개리 매튜스 주니어 릭 앤키엘 트로이 글로스 스캇 션웨이스 등 2005년부터 금지약물로 규정된 성장 호르몬을 복용한 선수들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지난 플레이오프서 스스로 시인한 폴 버드에 대해서는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며 징계를 보류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제는 미첼의 보고서에 오른 선수들에 대해서도 이들과 같은 잣대가 적용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메이저리그는 사실에 입각한 징계를 내리기 위해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한 선수일지라도 증거가 없다면 처벌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일견 선의의 피해자를 내지 않겠다는 의도로 비칩니다. 선수 노조의 반발을 감안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약물 복용 문제를 놓고 메이저리그가 서슬 퍼렇게 나올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 그래도 미첼이 공권력을 빌려야 한다고 한탄할 정도로 실체적 증거 수집에 어려움을 겪은 마당에 선수 노조와 형량까지 타협해야 한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것저것 다 빼고 앙상한 가지밖에 더 있겠습니까.

더욱 약물 징계 규정을 듣도보도 못한 시절에 약을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장본인 배리 본즈에게 그 누구보다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메이저리그는 정작 무슨 방망이를 휘두를 것입니까.

한 해가 가는 세밑입니다. 메이저리그의 약물 문제도 그렇게 넘어가나 봅니다.

구자겸 미주중앙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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