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절망 걷어낸 23만의 땀 업그레이드 자원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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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10일째인 16일 천연기념물 431호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를 찾은 자원봉사자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들은 이날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기름띠를 걷어냈다. [경상일보 제공]

시민도 태안 주민들의 검은 슬픔이 자원봉사자들이 흘린 땀방울에 씻기고 있다. 이 지역을 뒤덮은 검은 기름띠도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에 서서히 옅어지고 있다. 휴일인 16일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 등지에 자원봉사자 4만여 명이 몰렸다. 15일에도 4만5000여 명이 검은 기름을 걷어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공무원.군인.경찰.주민까지 합하면 23만여 명이 넘는 봉사자가 태안반도를 찾아 삶의 터전을 잃고 신음하는 이웃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1995년 전남 여수 시프린스호 때 수천여 명에 불과했던 자원봉사 인원이 이번 재앙 때는 수십 배나 늘었다. 자원봉사의 정신이 이제 국가의 대재앙을 이겨내는 밀알이 되고 있다.

"해수욕장에 흩어진 기름을 걷어내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 10일째인 16일. 추운 날씨 속에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해수욕장을 찾아 부모와 함께 기름띠 제거에 나선 경남 거제 옥포초등학교 김주리(12.여).정열(10).지희(9.여) 3남매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기름 유출 사고 이후 10일 동안 태안에는 23만여 명(군.경, 주민, 공무원 13만여 명 포함)의 자원봉사자가 몰렸다. 이 중 개인 자원봉사자는 3만여 명으로 태안군은 추산했다.

팔을 걷어붙인 이들 개인 자원봉사자가 모여 만든 거대한 파도가 해안의 검은 기름띠를 씻어냈다. 개인 자원봉사자들은 주로 가족 단위가 가장 많았다. 피해를 보지 않은 인근 대천 해수욕장에 놀러 왔다가 자원봉사 활동을 벌인 연인.친구들도 눈에 띄었다.

경남 거제에서 온 김동경(42.회사원)씨는 "기름 냄새가 아이들의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 망설였지만 환경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기 위해 아이들을 설득해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개인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방제복.장화 같은 방제 장비를 직접 갖고 왔다.

태안군 서덕철 부군수는 "자원봉사자가 이렇게 많이 몰릴 줄은 몰랐다"며 "주민들은 처음에 이런 큰 재난을 접하고 망연자실했지만 국민이 이렇게 힘을 모으니 어떠한 재앙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태안=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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