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기지와도란도란] CEO를 보면 주가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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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억울합니다. 이유가 없어요. 월요일 반박 자료를 낼 테니까 기다려 주세요.”
  한 코스닥 기업 사장의 항변이었다. 그와 통화한 것은 몇 달 전 금요일. 신용거래의 위험성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면서다. 당시 그 회사의 신용잔고율은 20%에 육박했다. 5주 가운데 1주는 빚을 내 산 주식이라는 의미다.

시장에는 사장이 사업 확장과 지분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사채를 끌어 썼고, 사장과 사채업자들 간 사이가 나빠지자 사채업자들이 담보로 잡고 있는 주식을 시장에 쏟아내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기에 주가 하락으로 담보가 부족해진 증권사들은 투자자들이 보유한 주식을 강제로 내다 팔아 대출 회수에 들어갔다. 사채업자 매물에 반대매매 물량까지 겹치면서 주가는 연일 하한가 행진을 이어갔다. 사장은 그러나 사채업자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회사의 발전을 음해하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월요일 오전, 그 사장이 횡령 혐의로 피소됐다는 공시가 떴다. 당장 통화를 시도했다. ‘연결할 수 없다’는 기계음만 흘러나왔다. 결국 억울하다던 사장은 검찰에 구속됐다. 그 사이 그 회사의 주가는 사상 최장 하한가 기록을 갈아치우며 지금은 최고가 대비 99% 가까이 떨어졌다. 투자자들은 손 놓고 당했다. 신용까지 끌어 쓴 사람들은 깡통계좌까지 차게 됐다.

그간 그 사장의 언론 인터뷰를 찾아보니 이번 사태는 짐작할 만했다. 뚜렷한 실적 개선이 없는데도 6개월 만에 10배 가까이 주가가 올랐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 주가가 싸다”고 호언장담했다. 불과 6개월 동안 새로운 계열사를 7개로 늘리는 등 인수합병(M&A)을 무서운 속도로 진행시켰다. ‘30대 M&A 귀재’라는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그러나 인터뷰에 드러난 ‘귀재’의 방식은 사들인 회사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또 다른 회사를 사들이는 무리한 몸집 불리기였다. 사장 인터뷰 기사만 꼼꼼히 따져가며 읽었어도 멋 모르고 당하는 투자는 막을 수 있었다.

워런 버핏은 “전 세계 투자 기업들이 뭘 하는지 전부 감시할 수는 없다”며 “대신 믿을 만한 경영자가 있는 기업에 투자한다”고 말했다. 회사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그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면 그 사람의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투자하겠다면 언론이나 각종 인물 사이트에서라도 CEO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야 한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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