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동심 키우는 그림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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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분망중에 떠도느라 내가 집의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은 잠자리에서 동화나 옛날 이야기를 지어 들려주는 일정도다. 낮동안 대충 메모해 둔 이야기에 얼개를 맞추어 들려주다 보면 어느새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듣게 된다.이나마 충실히 지켜지지도 않지만 이 일만은 지속하려 노력한다.나 어렸을 때와는 비교가 안되게 동화나 그림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신뢰감 이 가는 것은 손에 들기가 점점 어려워져 직접 내가 이야기를 꾸며들려주는 것이다.
열살 전후의 우리 집 아이와 같은 또래들에게 독서위생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내가 아홉살 무렵에 읽었던 그림동화 중에『눈사람 이야기』라는것이 있었다.좀체 동화책 따위를 손에 넣기 어려운 시절이어서 어떤 어른으로부터 선물받은 이『눈사람 이야기』를 나는 중학생이될 때까지 곁에 두고 보았다.
중국의 동화책을 번안한 것이었는데 내용이라야 별게 아니었다.
산골에 사는 어린 형제가 어느 겨울 눈이 많이 내려 한나절 내내 마당에 쌓인 눈으로 열심히 눈사람을 만들어 옷입히고 모자까지 씌웠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아침햇살에 그만 눈사람이 흉칙하게 녹아내려 있어 어린아이들이 대성통곡한다는 이야기다.그때 아빠가 빙그레 웃으며 우리네 인생도 이런 것이라는 투의 말로 달래게 되는데 내용은 분명하지 않지만 그림들이 참으로 뛰어났다고 생각된다.지금도『눈사람 이야기』하 면 한장 한장의 그림이 환히 펼쳐져 떠오르면서 마치『노자(老子)』같은 경전처럼 지혜로운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황금도깨비 상」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상을 받은 그림동화한 권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우리가 소홀했던 이 분야에 좋은 작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다시 가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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