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LG그룹 ‘컴백說’까지 나온 하이닉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0호 19면

‘탐은 난다.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살 사람도, 팔 사람도 부담 … ‘제3의 길’ 거론

새 주인 찾기에 나선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업계의 평가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무엇보다 덩치가 크다. 올 들어 한창 빠진 주가에도 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현재 11조7000억원이 넘는다. 하이닉스 주주협의회(옛 채권단)가 가진 지분 36.05%를 인수하는 데만 4조원 이상이 들어간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더하면 적어도 5조~6조원의 인수자금이 동원돼야 한다는 계산이다.

두 번째는 반도체 산업이 가진 독특한 리스크 때문이다. 시설 투자에만 매년 3조~4조원이 들어가지만 안정적인 수익은 보장되지 않는다. 돈을 찍어내던 캐시카우가 일순간 돈을 태워먹는 ‘캐시 번(cash burn)’으로 돌변하기 일쑤다. 인내심 있게 반도체에 매진할 각오가 없다면 뛰어들기 힘들다는 얘기다.

주주협의회의 금융사들 사이에 국내에서 인수 희망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푸념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외 매각을 추진하기도 어렵다. 국가 전략 산업인 만큼 ‘기술 유출’ 논란에 휘말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주주협의회 멤버인 산업은행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현대건설·대우조선해양 등 대어급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매물”이라며 “파는 입장에서도 고민이 많아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자문사로 선정된 크레디스위스는 연말까지 하이닉스의 경쟁력 확보와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주주협의회는 본격적인 매각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최근 LG와 하이닉스의 물밑접촉설이 돌출돼 파장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김종갑 하이닉스 사장은 진위를 묻는 기자에게 “전혀 근거 없다”고 말했다.
 
LG와 특별한 인연

“하이닉스 뿌리의 절반은 LG 아니겠습니까.”

지난 4월 LG전자를 찾은 김종갑 사장은 남용 부회장에게 이렇게 눈길 끄는 인사를 건넸다. LG와 하이닉스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한 덕담이었다. LG그룹은 1999년 김대중 정부의 ‘빅딜’(대규모 사업 교환)로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겨야 했던 아픈기억이 있다. 구본무 회장은 당시 거세게 저항했다. 하지만 김 대통령과 청와대의 회동 끝에 결국 반도체를 현대그룹에 내줘야 했고, 구 회장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당시 중개역은 전국경제인연합회였다. 이후 구 회장은 전경련과 인연을 끊기까지 했다. LG그룹은 올해 발간된 60주년 사사(社史)에서도 “(반도체 빅딜이) 기업 간 자율 조정이라는 원칙과 시장경제 원리를 충실하게 반영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업계에서 LG를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손꼽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LG는 하이닉스 인수 가능성을 줄곧 부인해 왔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얘기다. 최근 일부 언론에 물밑 접촉설이 나오자 LG그룹 관계자는 “최고경영층을 포함해 내부에 그런 논의가 전혀 없다”고 또다시 부인했다.

실제로 외부에서도 LG의 인수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투자증권 이훈 애널리스트는 “LG그룹의 핵심 사업이 LCD·휴대전화·석유화학 등 경기에 민감한 업종인데 반도체까지 가져오게 되면 사업 리스크가 너무 커진다”며 인수 가능성을 낮게 봤다. 지난해 LCD 사업 부진으로 그룹 전체가 휘청거렸던 사례가 대표적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반도체는 1위 기업이 극히 유리한 ‘승자 독식’ 사업이다. LG로선 라이벌인 삼성이 업계 ‘지존’으로 버티고 있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평이다.

이 때문에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리스크를 다 지느니 상호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실리를 찾으려 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남용 부회장은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없이 사업하는 데 익숙해졌다”며 “하이닉스는 전략적 파트너로, 두 회사이지만 한 회사처럼 협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끈끈한 인연’을 반영하듯 양측의 스킨십도 잦다. 5월에 김종갑 사장과 권영수 LG필립스LCD 사장이 만남을 가진 뒤 서로 경영기법을 벤치마킹하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원가 절감 등에서 ‘하이닉스 기법’을 적용하기도 했다.

‘현금 부자’ 기업들도 거론

안팎에서 ‘최적 후보’로 꼽히고 있는 LG로서는 굳이 먼저 나설 이유가 없다. 다만 업계에서는 “그룹 전체가 반도체에 집중해야 하는 구조가 되는 만큼 무엇보다 오너의 결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수 후보로 SK와 현대중공업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현금이 풍부한 데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여기에 현대중공업은 ‘옛 현대가(現代家) 재건’이라는 명분도 있다는 해석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아직까지 인수 의향을 밝힌 곳은 없다. SK텔레콤은 지난 6월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업체인 에이디칩스를 인수하려다 사외이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반도체사업은 SK가 해보지 않은 생소한 분야인데 이걸 하려는 이유가 잘 이해가 안 된다”는 게 당시 사외이사들의 반대 이유였다.

이미 반도체 사업을 하고 있는 동부그룹도 김준기 회장의 남다른 집념 때문에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기존 반도체 사업이 수년째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제3의 방안은

최근 하이닉스 주주협의회는 지분 매각 제한 기한을 연장했다. 당초는 올 연말까지였지만 하이닉스의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지분을 팔지 않기로 한 것. 사실상 무기한 연장이다. 이에 대해 “인수 후보들을 접촉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는 의미”라는 해석도 나온다.

더구나 지금 주가로는 지분을 내다팔 상황도 아니다. 현재 반도체 업황은 바닥이다. D램 고정가격(512Mb DDR2 기준)은 올 초 5달러 선에서 최근 1달러까지 떨어졌다.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4분기에 모든 업체가 적자를 낼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하이닉스도 예외는 아니다. 2003년 3분기 이후 ‘17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마감할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인수 의지만 확실하다면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이와 관련,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전략적 투자자와 재무적 투자자가 지분을 나눠 인수하는 방식이 유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에 관심이 있는 업체(전략적 투자자)와 투자 수익에 목적을 둔 금융사(재무적 투자자)가 함께 참여한 뒤 2~3년 후 전략적 투자자가 최종적으로 주인이 되는 방식이다. 일부 금융사의 지분만 우선 인수하고 남은 금융사가 일정 기간 백기사 역할을 해주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김종갑 사장도 지난 7월 미국의 경제 전문 통신인 다우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업 덩치가 커져 단독으로 지분을 매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방식은 주주들이 결정해야겠지만 금융기관과 연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또 다른 대안으로 특정 지배주주를 두지 않는 ‘포스코 방식’을 내세우기도 한다. 워크아웃 졸업 이후 장기간 오너가 없는 상황이 지속됐지만 경영에 특별히 문제는 없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가 생명인 반도체 업체에는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여러 말이 있다. 하지만 아직 주주협의회에서 정식으로 논의된 바 없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