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선 닷새 앞두고 'BBK 특검법' 충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대선을 닷새 앞둔 14일. 과거 이맘때 여야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마지막 선거운동에 한창이었다. 그러나 이날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날카롭게 대치했다. 이른바 'BBK 특검법안' 혹은 '이명박 특검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신당과 이를 막으려는 한나라당의 격돌이다.

여야 간 대치와 폭발은 2단계로 나눠 확산됐다.

1단계는 한나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모든 출입문을 봉쇄하며 신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바깥 중앙홀에서 연좌 농성을 벌인 것이다. 2단계에선 본회의장 안으로 실력 진입한 신당 의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마치 고지 점령전을 벌이듯 '국회의장석 쟁탈전'을 강행하며 격한 몸싸움으로 번졌다.

◆쇠줄로 본회의장 걸어 잠근 한나라당=오전 9시 한나라당은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열기로 했다. 그러나 갑자기 장소를 본회의장으로 바꿨다. 전날 이미 본회의장을 점거한 의원들을 포함, 전체 128명 의원 중 110여 명이 모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쇠줄.쇠파이프.전선.소파 등을 이용해 본회의장으로 통하는 모든 출입문을 봉쇄했다.

신당도 이날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한 번씩 비공개 의총을 열어 특검법안 상정과 탄핵소추안 처리에 대한 전략을 가다듬었다. 신당은 의총이 끝난 오후 2시30분쯤 본회의장으로 직행했다. 전체 의원 141명 중 12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본회의장 문이 잠겨 있자 연좌 농성으로 전의를 다졌다. 정동영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해찬 의원은 "올해로 의원생활 20년째인데 로텐더홀(본청 중앙홀)에서 의사당에 못 들어가고 연좌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공이 부활한다는 불길한 조짐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텐더홀엔 신당 의원과 사무처 직원 등 300여 명, 한나라당 관계자 100여 명이 얽히고 설켜 북새통을 이뤘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잘 가세요,잘가세요~'라는 노래를 부르며 신당 의원들에게 야유를 보냈다. 신당의 이상민.유시민.한병도 의원 등은 4층 방청석으로 올라가 본회의장의 한나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신당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진 한나라당=오후 5시쯤 국회 경위들이 전기톱을 들고 나타났다. 임채정 국회의장이 본회의장 문을 열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틈으로 들어 온 전기톱에 쇠줄이 잘려 나갔다. 문은 5시20분쯤 열렸다.

곧바로 신당 의원들이 "진실 승리"를 외치며 의장석으로 돌진해 갔다. 의장석 주변에서 여야 의원 간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양당 의원들 사이엔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등의 욕설도 오갔다.

이때 신당 강기정 의원이 다이빙하듯 의장석을 둘러싼 한나라당 의원들 속으로 뛰어 들었다. 정봉주 의원도 뒤따랐다. 이들을 막는 과정에서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이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다. 몸싸움 과정에서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은 뒤에서 강 의원의 넥타이를 잡아당겼고 목이 졸린 강 의원이 단상의 전화 수화기를 휘두르는 바람에 한나라당 김영숙.최구식 의원은 머리를 맞았다.

심재철 의원은 자신의 철제 지팡이를 휘두르며 막으려 했지만 오히려 신당 의원들에게 지팡이를 뺏겼다.

수십 명의 신당 의원들이 의장석 왼쪽에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을 덮쳤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저항했으나 무기력하게 무너지며 신당 의원들에게 한 명씩 끌려 나갔다. 이 와중에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이 쓰러져 들것에 실려 나가 병원으로 직행했다. 난투극은 20여 분간 이어졌다.

의장석을 차지한 신당 측은 임 의장이 직권상정을 예고한 17일 오전까지 소속 의원 전원이 2교대로 돌아가며 의장석 사수에 나섰다.

글=이가영.김경진.이종찬 기자 , 사진=강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