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피 '수혈시대' 눈앞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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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수혈은 많은 생명을 살린다. 반면에 에이즈.간염 등 여러 질병을 옮기기도 한다. 병 고치려다 되레 병을 얻는 꼴이다. 드물지만 응급상황에서 혈액형 검사를 잘못해 엉뚱한 혈액형의 피를 수혈하는 바람에 환자가 죽기도 한다.

그래서 혈액형에 상관없이 수혈할 수 있고 병원균을 옮기지 않는 피의 개발은 의료계의 오랜 숙원이다. 이런 꿈이 조만간 현실화될 전망이다. 유수의 생명공학회사들이 인공혈액 개발에 발벗고 나서고 있으며, 일부는 임상시험을 끝내고 실제 응급환자한테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인공혈액 개발은 미국 바이오퓨어사, 노스피얼드 래보러토리스, 캐나다 헤모졸, 일본의 와세다대학 등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바이오퓨어사는 1997년 개 수혈용인 '옥시글로빈'을 처음으로 개발, 시판에 나섰다. 소의 혈액 중 헤모글로빈만 골라내 만든 것이다. 사람에게는 고혈압 발생 등 부작용이 심해 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 이후 인공혈액 개발이 봇물을 이뤄 임상에 들어간 것만 10여가지가 될 정도다. 최근에는 노스피얼드 래보러토리스의 '폴리헴'이 구급차용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으며, 헤모졸사의 경우 임상 3상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응급환자에게 수혈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구급차에서는 이제 사람의 피 대신 인공혈액을 수혈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군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쟁 중에 당하는 부상은 과다출혈로 쇼크사하는 경우가 많다. 인공혈액은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쟁 중에 많은 장병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올들어 스웨덴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병원에서는 분말형 혈액을 링거액 등에 타 수혈하는 데 성공했다. 8명의 환자에게 수혈한 결과 어떤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이 병원 의사들은 말했다.

인공혈액은 유효기간이 지난 헌혈액을 가공해 만들거나, 과불환탄소 등 합성화합물로 만드는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사람의 혈액 기능 중 산소를 운반하는 능력을 얻는 것이 목표다.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수거, 면역기능 등 다른 역할도 하도록 하는 것은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폐기 예정인 헌혈액은 인공혈액의 훌륭한 원료. 여기에서 헤모글로빈이나 알부민을 골라낸다. 그런 뒤 헤모글로빈의 독성을 없애는 작업을 한다. 헤모글로빈이 적혈구 안에 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헤모글로빈만 추출했을 경우에는 산소운반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콩팥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독성을 없애고 특성을 좋게 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공혈액이 혈액 대체제로 자리를 잡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변시명 교수는 "장기간 수혈을 받아야하는 환자에게는 인공혈액을 쓰기 어렵다"며 "조직 거부 반응과 안정성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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