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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며생각하며>8.쉬운 경제학책 두권낸 宋丙洛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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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송병락(宋丙洛)박사,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이 사람은 올해 9월 한꺼번에 저서를 두권이나 펴냈다.무언가 단단히 마음 먹은바있었길래 책을 이렇게 쌍둥이로 배고 낳았을 게다.이 쌍둥이 책의 제목은 형이『한국인의 신화,일본을 앞선다』이 고 동생은『세계로,초일류 선진국으로』다.
경제는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 따라 실천이 될때도 있고 말이 될 때도 있다.말도 두가지다.하나는 학문이고 하나는 사상이다.
경제를 학문하는 것으로만 끝내는 것은 세상에 싱거운 일이라고 본다.실천(實踐)하든지 적어도 사상(思想)은 해야 값어치가 있다.경제를 실천한다는 것은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이다.
학문과 사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공자(孔子)말씀이 있다.
『학문만 하고 사상하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고 사상만 하고 학문하지 않는 것은 위태롭다』〈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학문은 남의 것을 많이 닦는 것이고 사상은 내것을 조금 여는것이다.송병락씨 자신의 말대로 하면『이제 50대 중반에 들어섰으니 갈날 준비도 해야한다는 생각』에서 이 두책을 썼다는 것이다.나는 이 말을 듣고 느꼈다.아,이 분은 자기 의 여태까지 연구한 학문에 비로소 자신의 사상을 갖추는구나.사상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것이라야 하고,자신이 속하는 공동체에 관한 것이라야하고,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서 있는 것이라야 하리라.그가 말을 잇는다.
『옆집에 사는 국민학교학생이 책을 벌써 수백권 읽었습디다.그런데 그중에 경제 책은 단 한권도 들어 있지 않아요.직장인들은자기 업무와 관련된 경제 책을 혹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그러나가정주부들은 굉장히 많은 독서를 하는 분도 경제 책은 읽지 않습니다.그래서 알기 쉬운 경제책을 하나 써보자고 마음 먹은 끝에 만든 것이 이 두 책입니다.』 이 두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말의 뜻을 알게 된다.그에게는 안면(顔面)에도 자세(姿勢)에도 긴장한 근육이 없다.그렇지만 그는 전도사(傳道師)적 소명(召命)의식을 가득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쉬운 경제 책을 쓰는 것이 그의 목적은 아니었으리라.모든 국민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었기에 굳이 전력을 다하여 누구나 알기 쉽게 쓴 것이라고 나는 여기고 있다.그는 자신이 가진 이 소명의식을 긴장하기보다 즐기는 여유를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무슨 내 용을 쓴 책이냐고,그의 입으로부터 직접 듣고 싶어서 물었다. 『첫 권에는 일본을 따라 잡아 보자고,그리고 따라잡을수 있는 능력과 조건이 우리 한국 사람에겐 갖추어져 있다고 썼습니다.둘째 권에서는 그런 선진국이 되려면 어떤 전략을 써야 하느냐를 광범하게 다루었습니다.여러 가지 최신 경제.경영 용어를 광범하게 동원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쉽고 재미있도록 예와 해설을 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두 책은 진정한 의미에서 경제학 교과서다.경제학과 경영학을 통합한 교과서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게다가 대단히 쉽게 쓰여진 책이다.
경제 책에는 국적(國籍)은 몰라도 현실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그 유명한 새뮤얼슨의 경제학 교과서『Economics』1948년 초판은 미국 경제를 당시의 가장 긴요한 현안(懸案)이던 재정과 금융을 중심으로 용어와 이론을 엮어 설명한 책이었다.그후 미국경제의 환경과 현안이 바뀌어 가자 이를 걸맞게 설명해 내기 위해 계속 개방경제.인플레이션.성장론등을 보완하여 개정판을 내오다가 92년에는 제14개정판까지 내게 되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자는 것과 그 방안을 다루는 것이야 말로 한국의 당면한 가장 절실한 현실 경제학일 것이다.
『나와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는 일본의 이름난 정치학자 시라도리 레이(白鳥令)도카이(東海)대학 교수에게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 얘기를 했더니 웃어 버립디다.그래서 현재 세계에서 일본을 따라잡을 나라가 한국을 제외하고 어떤 나라가 달 리 있겠느냐,사시미 먹는 것도 같고 가라오케 즐기는 것도 같지 않느냐,이렇게 시작해서 따지고 들었더니 나중에는 그쪽에서 언어의 문법도 같다는 등 맞장구를 치고 나옵디다.그래서 그더러 웃을 일이아니라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는 정치학적 방법론을 써 보라고 권했더니 마침내 그렇게 해보겠노라고 동의했습니다.그 사람이 쓴『정치발전론』이라는 책은 한국에서도 대단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송병락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적응력이 세계 그 어느 민족보다 강하고 진취적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풀을 먹을 수 있는 민족으로서 보통 중국 사람을 꼽습니다만 한국사람은 중국사람 먹는 것 가운데 못 먹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그런데 중국 사람은 안먹는 풀 가운데 한국 사람은 먹는 것이 있습니다.고사리 와 김이그렇습니다.풀만 그런게 아니라 고기도 그렇습니다.한국 사람은 이 지구 어델 가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든 것이면 어떤 식 요리나 잘 먹고 잘 소화해 냅니다.날로도 먹고 데쳐서도 먹고 구워서도 먹고… 또 이것들을 전 부 한데 섞어 비벼서먹고,비빈 것에다 물을 부어 끓여 매운탕을 해서도 먹고….
한국사람은 섭씨40도나 되는 중동의 사막에서 일하다가 그 자리에서 비행기를 태워 영하15도나 되는 시베리아 동토(凍土)에다 내려놓으면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세계유일의 인종이라고합니다.서양사람들 같으면 적어도 1주일의 적응기 간을 보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겨울은 시베리아처럼 춥고 여름은 열대를 뺨칠만큼 더운데가 한국이니까요.
그뿐만이 아닙니다.한국은 반도라서 보수적이 되려들면 대륙사람들처럼 되고 진취적이 되려들면 섬사람들을 능가합니다.이번 외국여행길 비행기안에서 韓日간을 다니며 보따리 옷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그 사람말이,일본여성은 파리에서 최신패션 옷을보면 남들이 입기전에 어떻게 내가,이렇게 주저하다가 사지 못하고 만답니다.한국여성은 하루라도 남보다 먼저,하며 얼른 사입고돌아와 서울거리를 활보한다는거 아닙니까.그런 반면에 한국사람은가족제도 등에서는 계속 매우 보 수적입니다.미국은 아동의 29%가 결손가정 출신입니다.머잖아 미국은 지존파로 가득 찬 나라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한국사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언제나 유교적 채찍질을 자기자신과 사회에 가하고 있습니다.
***超일류조건 허다 이밖에도 우리가 세계의 초일류 나라가 될 수 있는 조건은 허다합니다.일본은 이미 노령인구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반면 우리는 한참 일하는 젊은 연령의 나라로 성숙해가고 있다는 점,일본사람보다 한국사람이 자유시장 경제나 민주주의에 더 창의적으로 적응한다는 점,정보의 유통에 있어서도 한국사람은 한사람이 여러 형태의 사회적 모임,예를 들어 내 경우에는 동창회.ROTC모임.계모임등에 참가하고 있어 정보의 교환이 전후좌우 막히지않는다는 점등이 있습니다.』 송병락교수는 말한다.그러나 국가의 긴 목표없이 서로 내 잘났다고 다툼질이나하다가는 노론.소론(老論.少論)으로 갈라져 서로 싸움질하던 꼴로 돌아갈수도 있게 보인다고 걱정한다.아닌게 아니라 최근에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더욱 진해져서 일본을 앞서자니까 다리 무너지는데서는 벌써 앞섰는데 뭘 따로 또 앞서겠다고 하느냐고 지식인사회가 먼저 빈정거리고 있다고 말한다.목표를 세우면 동시에 그목표를 달성할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강조한다.요즘리엔지니어링이라 고 부르는 것이 다름아니라 전략을 올바로 세우자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국가경제의 시스템을 온통 리엔지니어링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요즘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내세우려 하고 있는 「세계화」라는 것은 어떻게 해석하느냐고 물었다.
***에티켓도 세계화 『서울대학교 교수들 사이에서는 「세계화」에 장단 맞추지 말자.선진화.국제화.세계화 이렇게 말만 바뀌고 있는데 얼마 안가서 또 바뀌게될 것이다,이런 분위기입니다.
이래서는 안되지요.목표가 분명히 서지 않아서는 안됩니다.세계화는 목표가 될수 없는 하나의 과정적인 슬로건입니다.그러나 이왕세계화 이야기가 나왔다면 그 추진 방향은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돈.사람.물건.문화.기술,이런 것이 세계 어느 나라에 갖다놓아도 통할수 있고,또 세계 어느나라의 이런 것들도 한국에서 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세계화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국민학교 때부터 최소한 영어 하나는 잘 할수 있게해야합니다.기본 질서와 에티켓도 세계화되어야 합니다.법과 제도가 세계화되어야 합니다.도시들이 월드 타운(world town)이 되어 어느 나라 사람이 와도 불편이 없어야 합니다.』 헤어지면서 우리는 신문사 안에 요즘 새로 차린 맥주 코너로 가서생맥주를 두어 잔 나누었다.이 인터뷰 기사를 어떻게 정리했으면좋겠다는 특별한 희망 사항이 있느냐고 내가 물었다.그가 진지한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쓴 쉽고 재미 있을 수도 있는 이 책 두권이 잘 나가도록 좀 써주세요.』 그의 이 당부를 실현시킬 재주가 내게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그대신 나는 그가 했던 다음 말을 한번 더 되새겼다.『일본을 따라잡자는 한국의 장기목표는 정부가 세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우리같은 서생이 나서서 할일이지 요.그리고 姜선생 같은 언론인도 참여해야할 것입니다.』자기가 쓴 책이 잘 팔리게 기사를 써 주었으면 하는 그의 소원은 다른데 목적이 있지 않다.일본을 따라잡자는 목표가 전국민 사이에 더욱 넓게 번지도록 하려는 것이야말로 그의 진정하고도 단단한 소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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