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머독 스타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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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머독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명령을 내리고 있다."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76) 뉴스코프 회장이 최근 인수한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관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12일 보도했다. 머독은 WSJ의 모기업인 다우존스 인수를 최종 확정하는 주주총회(현지시간으로 13일)를 앞둔 상태다. 머독은 7월에 다우존스 협상팀과 인수에 합의한 뒤 이사회 승인까지 받았다. 미 언론들은 "주주총회에서 인수안 승인이 확실시돼 WSJ 인수라는 머독의 꿈이 완전히 성취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머독 회장은 WSJ의 모기업인 다우존스에 이미 사무실을 마련했다. 이미 WSJ 편집국을 수시로 돌아다니고 있으며, 뉴저지의 인쇄 공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WSJ의 경영진과 편집국장 등을 만나 짧은 기사와 정치 기사를 늘리라며 구체적인 편집 방향을 제시해 왔다. NYT는 "머독은 국내.국제 뉴스도 늘리자고 말하고 있어 뉴욕 타임스의 경쟁자로 나서려는 의도가 더 분명해졌다"고 평했다.

특히 머독은 더욱 간결한 기사를 원하고 있다. 그동안 WSJ는 1면에서 시작해 안으로 이어지는 피처 기사가 특징이었다. 머독은 더 많은 독자를 끌어들이려 제호에서 '월스트리트'를 빼는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머독이 얼마나 WSJ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주에는 WSJ의 발행인과 다우존스의 최고 경영진을 심복으로 교체했다. 워싱턴 지국을 강화하고 경쟁지 기자를 빼오기도 했다.

하지만 WSJ에선 머독의 인수가 알려진 뒤 10여 명의 기자.편집자가 떠났다. 머독은 유능한 기자를 직접 만나 급여 인상을 약속하며 잔류를 권하고 있다.

루이스 우레넥(언론학) 보스턴대 교수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조직의 부드러운 전환을 꾀하는 게 보통인 언론 인수에서 이 같은 결단과 빠른 움직임은 드문 일"이라며 "머독은 스포츠카를 산 뒤 곧바로 운전하고 싶어하는 청년 같다"고 말했다. NYT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다우존스의 한 경영진도 "머독의 스타일을 알고는 있었지만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머독의 정치적 통제를 걱정하면서도 그가 약속한 자산 투자와 독자.광고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뉴스코프의 연간 수익은 290억 달러이나 다우존스는 20억 달러에 그친다.

블룸버그 통신은 13일 "머독이 52억 달러를 들인 다우존스 인수가 옳은 선택이었음을 보여줄 만한 수익을 올리려면 2010년 말은 돼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머독은 편집권 독립에 대해 밴크로프트 가문과 합의했지만 전문가들은 예산을 통제하는 머독이 WSJ를 완전히 장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루퍼트 머독=호주 태생 영국인으로 '미디어 황제'라 불린다. 그가 소유한 뉴스코프는 세계 52개국에 170여 신문사를 포함해 780여 개 미디어 관련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1952년 아버지로부터 호주 지역 신문을 물려받은 뒤 스캔들.범죄.스포츠 기사 위주로 지면을 만들어 성공을 거뒀다. 이후 영국의 더 선.더 타임스, 미국의 뉴욕 포스트와 폭스 채널, 홍콩의 스타TV 등을 인수한 데 이어 최근에는 미국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 저널까지 손에 넣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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