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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탈취 사건 … 안 풀린 3대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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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 우발적 범행인가

묵비권 활용하며 "충동적 범행" 주장

도피 자금 마련 등 사전 준비 치밀

범인 조영국씨는 경찰조사에서 묵비권을 활용하면서도 '우발적 충동 범행'임을 주장했다. 사건 당일 평소 가지고 있던 칼을 갖고 강화도를 배회하다 순찰 군인들을 보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범행 수법과 도주 과정을 보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를 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조씨는 10월 초에 범행 차량을 훔쳤다. 그는 이 차량에 '대리운전' 표시를 달고 다니다가 범행 뒤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가 이를 제거하고 도주했다. 또 번호판을 훔쳐 '4'자를 '1'자로 변조해 경찰의 차적 조회를 교란시켰다. 범행 당일에도 1차 도주의 목적지인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의 들판 인근에 미리 자신의 차량 한 대를 준비해 놓았던 점도 이번 범행이 일련의 스케줄에 따라 수행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범인은 범행 차량을 불태우면서 달고 다니던 개조 범퍼를 떼내 용의 차량을 위장하는 수법도 활용했다. 모자.안경.고속도로 통행권 등 적지 않은 유류품을 남겼음에도 지문을 전혀 남기지 않았던 점과 11일 부산의 우체통에서 발견된 편지는 고도의 지능적 범죄였음을 보여준다. '자수를 결심했다'거나 '해병 병사가 자신의 뒤통수를 때렸다' '군의 수사에 숨겨진 진실 규명' 등의 편지 내용은 수사의 초점을 돌리려는 고도의 연막전술이었음이 신문 결과 확인됐다.

검거 당시 소지했던 현금 1100여만원에 대해서도 '자수를 위해 귀금속을 판 것'이라고 진술했지만 도피자금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급히 팔아도 1100만원대에 이르는 보석을 지니고 다녔다는 사실도 "강도를 하러 강화도에 갔다"는 그의 말을 믿기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정기환 기자


2. 총기 매니어인가

엽총·전기충격기 자취방서 나와

PC게임에 빠져 현실과 혼동했나

군.경합동수사본부는 13일 조씨의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다세대 주택 반지하방에서 엽총 1정과 전기충격기 1개를 압수했다.

E산업이 제조한 '리베로 5.0㎜' 엽총이다. 전체 길이가 106㎝로 회전 6연발 탄창을 갖추고 있는 사냥총이다. 이 총은 조씨가 7월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총기 소지허가를 받고 경기도 내 모 총포사에서 구입했다.

조씨의 이웃은 "조씨가 광폭타이어가 달린 코란도 승용차로 사냥을 다니는지 차바퀴에 흙이 잔뜩 묻은 적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이날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조씨는 2005년 경기지방경찰청으로부터 권총식 가스분사기에 대한 소지허가도 받았다. 이로 미뤄 조씨는 총기 매니어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사냥용이나 방어용 총기류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경찰이 조씨가 또 다른 총기를 불법으로 소지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는 평소 자신의 방에서 온라인 전투게임에 몰두한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방 안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1인칭 총쏘기 게임인 '서든어택(Sudden Attack)'이 깔려 있다.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도 즐겼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에는 군인복장을 입혀 놓았다.

그는 지난 8개월 동안 주로 혼자 자신의 방에 머물렀다. 경찰은 주변 진술을 종합한 결과 "조씨가 방에 틀어박혀 온라인 전투게임에 심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씨가 사이버상에서뿐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실제 총기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현(범죄심리학) 동국대 교수는 "조씨는 진짜 총으로 게임(범죄)을 하고 싶은 과대망상증 경향도 가질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정영진 기자


3. 편지와 블로그

횡설수설 편지로 수사 혼선 유도

블로그의 미묘한 글 '감형'노린 듯

"가슴 아픈 현실 한국식 민주주의가 또다시 5.18 광주사태와 같은 일 또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12일 경찰에 붙잡힌 총기 탈취범 조영국씨가 쓴 편지에는 이같이 횡설수설하는 문장들이 눈에 띈다. 또 탈취범을 '탈치범'이라고 적는 등 대학원 교육까지 받은 사람이 쓴 글이라고 보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다. 조씨의 블로그에 있는 감수성 예민하고 섬세한 글들과 대조된다. 전문가들은 조씨가 완전범죄를 노리고 일부러 엉뚱한 글을 썼다고 분석한다. 경찰대 표창원(범죄심리학) 교수는 "수사당국에 혼선을 주려는 의도로 수준 이하의 글을 써 자신의 신분을 감추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필체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그의 가족은 편지의 글씨체를 전혀 몰라보겠다고 말했다. 조씨가 필체를 숨기려 일부러 왼손으로 편지를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범이나 배후인물이 편지를 대신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씨의 블로그에서도 범행 동기에 대해 의심할 만한 여지가 나타난다. 두 달 전 만든 블로그에 "아마도 나는 다중 인격일지도" "나는 현실 부재 정신지체 장애자"라는 등의 미묘한 표현들을 남겼다. 표창원 교수는 "범행을 계획하면서 내적 갈등을 심하게 겪은 흔적일 수 있다"며 사전 계획 아래 이뤄진 범죄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이수정(심리학과) 경기대 교수는 "조씨 블로그에 있는 문구나 사진, 배경화면 등을 봤을 때 감수성이 예민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보인다"며 "그런 조씨가 혼자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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