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공연 중 "불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12일 저녁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 도중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관들이 화재가 진압된 뒤 주변을 살피고 있다. [사진=김태성 기자]

12일 오후 7시45분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 도중 불이 나 관객과 출연진 등 1800여 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관객 20여 명이 연기로 인한 호흡곤란을 느껴 근처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또 이 불로 커튼과 조명을 비롯한 무대 시설 상당수가 훼손됐다.

당시 오페라하우스에서는 오페라 '라보엠'이 공연 중이었으며, 시작 15분 만에 불이 무대 천에 옮겨 붙으며 내부가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공연은 중단됐고, 놀란 관객들과 출연진.스태프들의 대피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큰 혼란은 없었으나 인원이 한꺼번에 비상구에 몰리는 바람에 일부 관객이 떠밀려 넘어지기도 했다. 예술의전당 측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오페라하우스 외에 토월극장과 자유소극장의 공연도 중단했다. 불은 소방차 32대와 소방관 130여 명이 출동한 뒤 23분 만에 진화됐다. 이날 화재로 지난 6일 시작돼 14일까지 예정된 '라보엠'의 공연은 모두 취소됐다.

목격자 진세헌(25.대학생)씨는 "벽난로에 불을 붙이는 장면이 있었는데 갑자기 불이 확 일어났다. 원래 '그런 장면이려니'라고 생각했는데 직원들이 소화기를 갖고 나와 진짜 상황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라보엠'의 출연진은 "이 장면에선 실제 불 대신 조명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전기 누전'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공연장을 빠져나온 일부 관객들은 대피 방송이 늦은 점에 대해 항의하고 입장료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다. 국립오페라단은 공연 관람료를 전부 환불할 예정이다.

오페라하우스는 예술의전당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연면적 4만3512㎡의 원형 건축물이다. 공연을 위한 무대 뒷공간과 객석, 그리고 휴식.쇼핑.모임이 가능한 공용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이날 공연은 국립오페라단과 예술의전당이 공동 제작했다. '라보엠'은 촛불과 벽난로 장면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외국에선 공연장에 소방차를 대기시키는 등 화재 대책에 만전을 기하는 게 보통이다.

◆라보엠=프랑스 시인 앙리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들의 생활'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가 만든 오페라. 파리의 뒷골목 다락방에 살고 있는 시인.화가.철학자.음악가 등 보헤미안 기질을 가진 4명의 방랑생활과 우정, 그리고 폐결핵을 앓는 가난한 처녀와 시인의 슬픈 사랑을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표현했다.

글=민동기.김호정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