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1960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연주하는 모습.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시도가 있었다. 50년대 말, 미 공보원(USIS) 원장이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제3의 사나이’와 같은 영화음악를 한국에서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치터 대신 가야금을 사용해서 모든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단순한 하나의 악기를 가지고 만드는 음악이야말로 큰 인기를 끌 것”이라고도 했다. 처음에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가야금 연주자일 뿐 당시까지만 해도 음악을 직접 만들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희극배우 김희갑이 나오는 영화라고 해서 나도 곧 구미가 당겼다. 김희갑은 당시에 얼굴만 봐도 사람들이 웃는 배우였다. 노래도 잘 하고 음반까지 냈던 그가 나오는 이 영화의 제목은 ‘억지 봉잡이’였다.
나는 가야금 하나를 들고 마산으로 내려갔다. 당시 영화 음악을 녹음하는 시설을 갖춘 곳은 마산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연주는 철저히 즉흥적으로 진행됐다. 영화를 끝까지 여러 번 본 후에 부분마다 다시 보면서 그때그때 음악을 만들어 넣는 것이었다. 잘 해내야겠다는 의욕이 솟아났다. 화면 앞에 앉아있으면 눈앞에 ‘1·2·3’ 모양의 빨간 불빛이 깜박였다. ‘3’ 모양의 불이 켜지면 딱 맞춰서 연주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산조나 정악을 바탕으로 장면마다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 넣었다. 자세한 영화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화면 자체가 우스운 장면이 많고 스토리도 만만치 않게 웃긴 코미디였던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영화 ‘억지 봉잡이’가 탄생했다.
미 공보원 원장은 우스운 영화 장면과 가야금의 해학이 담긴 소리가 썩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다. 본격적으로 작곡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작곡 연습을 한 셈이 됐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악상에 따라 자유롭게 연주하는 느낌이 아주 좋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영화의 내용을 거의 잊었기 때문에 요즘에도 가끔 이 영화가 아직도 남아있는지 궁금해진다. 아직도 미 공보원에 영화 필름이 보관돼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자료를 찾지는 못했다. 당시 미 공보원은 주로 기록영화와 문화영화를 만들었는데, 무슨 생각으로 이런 극영화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참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황병기<가야금 명인>가야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