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 거리에 예술을 입히다③

중앙일보

입력

<공공미술프리즘>, '우리가 만드는 우리 마을-수궁동의 스케치'

공공미술의 핵심적인 주체는 바로 ‘사람들’이다. 애매한 말이지만 정확한 말이기도 하다. 공공미술에는 별도의 전시장이 불필요한데, 미술품이 대중의 만나는 자리가 곧 전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전시장이라고 말하는 것도 부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공공미술 전시장은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주민 참여형 공공미술에는 당연히 더 많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게 바로 우리 동네 혹은 바로 옆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기 때문이다. 이제 살펴볼 동네는 서울시 구로구의 수궁동이다.
이곳 수궁동은 ‘우리가 만드는 우리 마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여섯 명의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2005년에 시작해 벌써 3년째 진행하고 있는 ‘수궁동 프로젝트’의 장이다. 다시 말해 3년째 지역 주민들이 ‘예술적으로 살고’ 있는 셈인데, 더욱 놀라운 것은 앞으로도 10년 이상은 더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끝내 현재 진행형의 무엇, 미래의 과제로 만들어 낸 수궁동 사람들에게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주민들과 3년째 그리고 있는 미완성의 진행형 벽화

수궁동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곳에는 지하철 온수역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옆에는 소음 방지를 위해 세운 회색 방음벽이 둘러 있다. 길이는 2km 가량.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방음벽은 마을의 핸디캡이며 이 역을 스쳐 지나는 이들에게는 눈살 찌푸려지는 흉물이다. 그렇다고 방음벽을 없애자니 이 또한 대책 없는 노릇.
결국 지역 주민들은 누구나 불만은 갖지만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는 이 문제를 위해 직접 나섰다. 수궁동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첫 시작부터 당연히 돈이 문제였다. 수궁동 지역 지원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을 받아들고서 주민들은 직접 자기 주머니를 털어 돈을 보탰다. 한 해에 다 완성할 수 없으면, 그 해에 돈을 모은 만큼만 진행해 나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수궁동 프로젝트에서 특히 주목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관의 전폭적인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방음벽을 아트월(art wall)로 바꾼다는 것은 그다지 녹록치 않은 일. 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지지부진과 지리멸렬을 오가는 지역 행사가 될 것이나 자발적 주민 참여형 축제가 될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사실 2005년 첫 해에는 조급한 마음에 전문가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최종적인 선택은 형편에 맞게 느릿느릿 그러나 꾸준히 해보자는 의견에 모아졌다.

이 느림보 프로젝트를 제대로 견디고 성공적으로 이끄는 최고의 무기는 이 프로젝트를 주민들 스스로 즐기는 것에 있었다. 거리가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변하는 것과 동시에 주민들 삶도 그렇게 변하기 시작한 했다. 100m 안팎의 벽면을 바꾸는 데도 한 해가 꼬박 걸리는데도 주민들은 이제 이렇게 말한다. “내년에는 좀 다르게 그려볼까 봐.” 자신들의 거리를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바꾸고 있는 중이므로 보전 상태는 두 말할 것 없이 좋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미술가 유다희 씨(프리즘 대표)는 수궁동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중 ‘개똥이 엄마’에 대한 인상적인 일화를 들려준다. 한 아주머니가 볼품없는 개 한 마리와 꽃을 정성껏 그리고 난 뒤 수줍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여기 그린 개는 우리 집에서 기르는 ‘개똥이’야. 남편이랑 나, 그리고 개똥이까지 포함해서 우리 식구가 모두 셋이거든. 가족 같은 개똥이가 너무 고마워서 여기 그린 거야.” 아주머니는 외로운 삶의 유일한 벗이라며 죽을 때까지 함께하길 바란다고도 덧붙였다고 한다. 그녀는 다음해에 또 나타났다. “내가 팔에 깁스를 해서 올해는 그림을 못 그려. 내년에나 그려야지, 뭐. 오늘은 그냥 구경 왔어. 하하하”
개똥이 엄마처럼 친구를 그리워하고 자기 삶이 조금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꺼내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는 게 바로 공공미술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궁동 공공미술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도시가 진정으로 아름다워지는 것은 곧 도시민들의 삶이 도시 속으로 스며들 때 가능하다. 다르게 말하면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은 도시가 아름다워지는 과정이라는 것! ‘우리가 만드는 우리 마을’,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객원기자 최경애 doongje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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