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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이제는실천이다>1.시리즈를 시작하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맨 마지막에 서울을 뜰 분이 불 좀 꺼주시겠소?』(Willthe last person out of Seoul please turn the light off ?) 지난해 연말 무렵 서울의 몇몇 외국 특파원들 사이에선 위와 같은 조크가 유행했었다. 「지겨운 서울 생활을 끝내고 싶다」는 서로의 뜻을 은밀한언어처럼 확인하곤 하던 조크였다.
서울의 거리에는 또다시 세밑 분위기가 깔리기 시작했지만 지난1년동안 서울은,또 한국은 과연 얼마나 달라진 모습으로 세계 속에 자리매김을 하고 있을까.
〈관계기사 3面〉 마치「쌀 협상」이 전부인양 혼란스럽던 지난해의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과 함께 내세워진「국제화」가 올해의 亞太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를 계기로「세계화」로 바뀌면서 또다른 개념상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우리는 1년전에비해 과연 얼마나 바뀌어 있는 것일까.
다음달이면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 신청을 하고 곧 세계무역기구(WTO)협정 비준도 해야만 하는 마당에,APEC에서의 무역자유화를 놓고는 오는 2020년까지 개도국(開途國)으로 남아야겠다는 우리의 입장-.
이것이 세계화를 지향하는 우리의 모순된 현 위치라는 사실을 우리는 똑바로,그리고 부끄럽게 마주 보아야만 한다.
아직 문턱도 넘지 못한 우리의 세계화 수준이 외국인들의 눈에는 더욱 확연히 집힌다.
중국인과 합작으로 한국.중국등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아일랜드인 로버트 켈리(40)씨는 세계 속에서의 한국의 수준에 대해 혹평을 서슴지 않는다.
〈金秀吉 경제부장〉 『서울의 외국 사업가들은「한국은 진정 달라지고 싶어한다.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그들은 당신의 돈과 기술을 원한다.그리고 당신이 한국에서 떠나기를 원한다」라고….』 이들이 말하는 한국의 사업 환경은 마치「어떻게 하면 기업 활동을 못하게 할까」를 연구해 놓은듯 완고한 껍질을 둘러 쓰고 있는 정부규제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효율과 안전,복합적인 도시 기능등 모든 면에서 짜증나게 만드는 서울의 시스템에서부터 외국인에 대한 배타(排他)를 틈틈이 드러내는 한국인 특유의 동질성(同質性)에 이르기까지,우리가 국제화.세계화를 지향하며 고쳐가야 할 부끄러운 부분 과 모든 비합리에 대해 이들은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것이다.
꼭 이들의 눈이나 손가락질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세계화를 위한 지속적인 추진력을 갖기 위해,우리 스스로의 깊은 자괴(自愧)는 반드시 선행(先行)되어야만 한다.
세계화는 커녕 선진화.국제화와도 아직 거리가 먼 우리의 교육,국제 사회의 변방(邊方)을 맴도는 것 같은 한국의 언론,세계정세와는 영 따로 노는 정치권,여성 인력을 줄줄이 놀리고 있는가부장적 사회,60년대의 국산품 애용 수준에 머물러 있는 90년대의 싸구려 애국심,압축(壓縮)성장의 관성(慣性)이 억압(抑壓)처럼 유지되고 있는 졸속(拙速)사회….
세계화의 기준에서 개선하고 뜯어 고쳐가야 할 일들은 이처럼 우리의 의식.문화는 물론 정치.행정.경제.사회 각 분야의 제도에 이르기까지 주위의 모든 영역,모든 범주에 걸쳐 흉한 고체(固體)처럼 웅크리고들 있다.
세계화의 개념을 정립하려는 작업들이 여기 저기서 한창이지만 위와 같은 모든 비합리와 모순을 걷어내가는 과정인 세계화를 국민학교 도덕 교과서의 정의(定義)마냥 누구나 알기 쉽게 만들어손에 쥐어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 지금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은 일상(日常)과 주위에 무감각하게 널려있는 모든 문제들을 다시금 바로 보고 하나 하나고쳐가는 실천이다.
세계화의 과제는 너무나 많다.그 범위 또한 너무나 넓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세계화는 어디서부터든 시작할 수 있고 어떤 것부터든 손댈 수 있다.
다만,더 늦기 전에 지금 당장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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