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구치는 기쁨 뒤엔 뼈아픈 반성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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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 수상소식은 투명하게 쏟아지는 겨울 햇살이었습니다. 언제나 시린 손을 말리며 달을 키우던 제 가슴 속이 환해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나의 작품이 이 상에 버금가는 것인가 하는 뼈아픈 반성이 솟구쳐 오르기만 하던 기쁨을 세차게 눌렀기 때문입니다.

 빈 모니터 앞에 앉을 때면 가끔 절망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절망이 깊으면 깊을수록 도달하고자 하는 곳도 더욱 높다는 것을 알기에 위안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 이 땅에서 시조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민족시라는 의미 외에 시조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 따뜻하게 하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읽혀져야 한다는 바람을 꿈꾸고 있습니다.

 창 너머 작은 숲을 바라다보았습니다. 잎사귀 떨군 나무들이 생생한 바람 소릴 달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랑과 상처를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힘겨움의 연속이기에 아름다움을 꿈꾸는 이들의 기도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고단한 일상의 벽에 따뜻한 하루를 만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 쓰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오늘, 언제나 빛나는 시를 쓰는 선배와 동료 시인들을 생각합니다. 앞으로 좋은 시를 쓰는 것으로 그들에게 진 빚을 갚아 나가려 합니다. 그리고 제 몸에 푸른 잎 돋게 해준 심사위원님들께 두 손 모아 감사를 드립니다.

 ◆약력=▶ 1961년 강원도 정선 출생 ▶ 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 시집 『마른 꽃』 ▶ 현 경희대 국문과 박사과정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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