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修能 총점검-출제방식 개선책 마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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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해 8월.11월에 이어 23일 세번째로 실시된 수학능력시험은 특히 출제과정에서 극심한 진통을 겪는다.
출제위원(대학교수)선발및 출제본부로 사용할 장소의 확보,문항개발등의 어려움 때문이다.
한달여동안 계속되는 방대한 작업을 매번 원시적이다 싶을만치 철저한 보안과 비밀속에서 진행해야 한다.
대학입시가 우리에겐「국가 대사(大事)」라 불릴 만큼 큰 일인데다,거기에 도전한 수험생만도 매년 70만명이 넘다보니 웬만한장치없이는 온갖 시비와 잡음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합리성.현실성을 갖춘 항구적인 운영방안과 제도가강구돼야 한다는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움직임은 보이지않고 있어『이대로라면 몇년 못가 훨씬 더 심각한 벽에 부닥치게 될 것』이란 걱정을 던져주고 있다.
우선 60명 정도가 필요한 출제위원 확보의 경우 외부와 완전격리.차단된 공간에서 한달간 말 그대로「감옥생활」을 해야하므로대상자를 선정해도 기피하는 일이 잦아 시험관리및 시행을 맡은 국립교육평가원측을 애먹인다.
평가원측은 봄부터 3~4배수의 대상자를 선정,가능성을 계속 타진하는 일에 들어간다.
명예나 한차례 봉사 정도로 여기는 교수들도 없진 않지만 상당수는▲개인 스케줄▲연구 공백▲구금생활에서 오는 고통등을 이유로거절하기 십상이다.
거기에다 가뜩이나 수능시험의 취지에 들어맞는 수준의 출제를 해줄 만한 교수도 그리 많지 않다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다음이 출제장소 확보문제로 출제위원및 검토위원(교사 30~40명).보안관리요원등 총 1백50여명이 합숙할 장소를 구하기 위해 역시 출제시작 반년쯤 전인 3월께부터 호텔물색에 나선다.
이번 시험 출제에서도 수안보및 도고지역의 한 호텔을 독채로 전세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새 문항의 개발 자체도 큰 숙제.
검토위원들의 여과과정을 거치긴 하지만 시행 첫해인 작년 두차례 시험의 난이도 조절실패로 수험생측의 거센 반발을 경험했듯 적정선의 난이도 조절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이미 출제됐거나 각종 모의 수능시험에 나온 문항과 유사한것을 피해야 하는 2중고(二重苦)도 겪는다.
이와 함께 역시 한달이 소요되는 채점문제도 만만치않아 작년의경우 3백만장 가까운(70여만명의 4개교시 분)답안카드의 전산채점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의뢰했다가 난색을 표하는바람에 애를 먹었으며,이에 따라 올해는 평가원 내에 자체 채점시설을 확보했다.
출제에서 채점에 이르기까지 드는 비용은 모두 80억~90억원. 엄청난 예산과 노력이 소모되는 이같은 출제방식의 대안으로는역시 장기간에 걸쳐 문항을 축적,때마다 난이도를 맞춰 일부를 골라 사용하는 문제은행식 관리방안이 제기된다.
연중 수시로 새 문항이 추가되며 수십만개의 문항이 축적돼 있다는 미국의 SAT(대입적성시험)나 일본 대학입시센터의 출제가바로 그 방식으로,이를 위해선 수많은 전문가 집단의 확보와 함께 출제자들의 보안의식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우리에게 문제은행 제도가 도입되면 어떤 식으로도 문제집이 나와 문항과 답을 외워 대입준비를 하는 풍토가생겨날 것』이란 부정적 견해도 많다.
결국 문제은행식 출제형태를 장기적 과제로 추진하되 이같은 부작용을 막을수 있는 종합적인 장치가 필요,지금부터라도 개발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金錫顯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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