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현안 놔두고 엉뚱한 장외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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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6일 아침 대전역의 12.12기소투쟁 집회 주변은 점차 5共시절의 장외(場外)투쟁 광경을 닮아가고 있었다.이기택(李基澤)민주당대표의 굳은 표정이나 말투도 그랬다.
李대표는『민족정기와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국민적 여망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과거 양김(兩金)씨가 5공의 권부(權府)에 던졌던 민주화의 강렬한 메시지를 연상케 했다.
비슷한 시간 국회 외무통일위는 이홍구(李洪九)통일부총리를 불러 민자당 단독으로 예산심의를 강행했다.익명을 부탁한 한 의원은『李대표가 의원직사퇴서를 내놓아 역설적으로 단독국회의 부담이다소 덜어졌다』고 했다.
이날 두 개의 현장은 「마주오는 두 개의 열차」라는 극단의 표현에 의존해야 했던 민주화쟁취시대의 장면과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비슷했다.
국민들의 시선은 어떤 것일까.
국회로 걸려 온 십여통의 전화를 알아 보았다.李대표의 선택을성원하는 사람,동정심과 아쉬움이 섞인 의견,이성 잃은 처사라는다양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았던 한 고참 국회직원은『과거의 장외정치시절과 달리 국민들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의원직 사퇴서가 정식수리되려면 민자당의원이 찬성해 줘야 하는 상황 때문에 李대표의 승부수를 받아들이는 강도가 대 단치 않다는지적이다.
오히려 민자당만의 국회에서 부천세도(稅盜)사건이 다뤄질 것이냐는 다소「엉뚱한」느낌을 주는 질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 국회가 공전(空轉)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야당의원들의 공세로 정부.여당은 더욱 곤혹스러워 졌을 것이고,세계화 구상이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정부측은 궁색해졌을 것이라는게 민자당의 고백이다.
李대표의 강공에 내심 한숨을 돌린 것은 청와대와 정부쪽이라는것이다. 李대표의 12.12투쟁 모순을 실감케 해 주는 대목이다. 확실히 국회에서 정부의 실책을 추궁하면서 12.12를 몰아가면 명분과 실리를 함께 움켜쥘 수 있는데도 李대표는 왜 엉뚱하게 의원직을 던졌을까.그의 사퇴를 12.12문제 자체보다 당내.외에서의 그의 위상과 연관시켜 보는 사람이 더 많은 까닭은 무엇인가.
그런 점들로 인해 그의 12.12기소 투쟁은「체면과의 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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