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투쟁 끌고가려 背水陳-李대표 의원사퇴 왜 나왔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민주당 이기택(李基澤)대표는 25일 아침 기자회견장을 들어서면서 이를 악물었다.李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의원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던졌다.그의 연설이『14대국회 해산을 통한 조기 총선을 요구한다』에 이르자 주변 당직자들은 일제히『이기택 』을 연호했다.李대표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말을 이었다.『4.19혁명후 젊은 나이에 국회에 들어왔다.어려운 시기에 국회를 떠나 국민여러분께 송구스럽다』.다시한번『이기택』연호가 이어졌다.
李대표는『12.12반란자 재판회부 투쟁은 이 나라가 개혁으로가느냐,수구보수화의 길로 퇴행하느냐를 결정짓는 역사의 분수령이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질문을 받지 않고 당사를 빠져나갔다.
곧이어 李대표는 수행원들과 서울수유리 4.19묘역에 참배한뒤26일의 대전집회 준비를 위해 충남예산으로 떠났다.
李대표가 의원직사퇴를 결심한 배경에 대해 분분한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전날밤 李대표와 심야회의를 가진 강창성(姜昌成)의원은『李대표는 14대 국회이후 상무대 비리사건.율곡비리.성수대교붕괴사고등 과거비리에 대해 국회가 한번도 제역할 을 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개탄해왔다』고 설명하고 있다.李대표는 그 이유를 3당합당으로 정권을 잡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5,6共 세력과의 제휴라는 태생적 한계에 묶여있기 때문으로 보았다는 것이다.그래서 李대표는 12.12야말로 이 한계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현안이라고 판단,강경투쟁을 주도했으나 벽에 부닥치자 의원직사퇴를 통해 배수진을 친 것이라는 설명이다.姜의원은또『李대표의 사퇴는 金대통령에게 나라의 앞날을 위해「헤쳐모여」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수구와 개혁으로 정치판을 새로 짜자는 얘기라는 것이다.
李대표는 당초 장외집회와 단식.농성의 수순을 거쳐 내달 12일께 의원직사퇴를 선언하기로 준비해왔다.그런데 金이사장의 국회등원 촉구발언이 터져나옴에 따라 더이상 당론을 통일하기가 어렵게 됐고 李대표는 준비해온 수순을 뛰어넘어 의원 직사퇴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25일 새벽 李대표로부터 의원직사퇴 결심을 통보받은 金이사장은 아무 말도 못했다고 전해진다.李대표는 기자회견 직전 최고위원 간담회에서『의원직.대표직을 모두 사퇴하려 했으나 당의 결속을 위해 의원직만 사퇴했다』고 말했다.李대표의 의 원직사퇴서는이날 오후 문희상(文喜相)비서실장이 자신의 사퇴서와 함께 황낙주(黃珞周)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
〈朴承熙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