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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검찰더러 잡아가라고 하지" 이회창 측근들 격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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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건 심하다. 이래선 수습이 안 된다."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은 17일 오전 최병렬 대표의 관훈토론회용 연설문 초고를 훑어보자마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 불법자금 사건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메시지 때문이다. 權의원은 李전총재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崔대표가 내놓은 '이회창 책임론'에 막상 李전총재 본인은 아무 말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측근들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崔대표 측은 "崔대표의 오늘 주장과 감옥에 가겠다고 기자회견을 했던 李전총재의 얘기는 사실상 같은 내용"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렇지만 李총재 측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李전총재의 최측근인 유승민 전 여의도연구소장은 "검찰이 부르지 않는 상황에서 李전총재 보고 검찰청 앞에 거적을 깔고 앉으라는 얘기냐"고 반문했다. "崔대표 얘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라는 '알맹이'가 빠져 진의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이어 "현 상황에서 崔대표가 남을 죽이는 게 도움이 되겠느냐"며 "차라리 검찰더러 李전총재를 잡아가라고 요구하라"고 비판했다.

李전총재와 함께 책임을 지도록 요구받은 서청원 전 대표 측도 격분했다. 한 측근은 "崔대표 거취가 관심사인데 지금 남의 얘기를 할 때냐"면서 "우리 스스로가 판단해 적절한 시기가 되면 입장을 밝히겠다"고 응수했다.

崔대표의 자기희생적 결단을 촉구했던 소장파들은 특히 불만이다. 남경필 의원은 "자기희생이 없는 崔대표를 누가 따르겠느냐"고 했다. 초.재선 의원 20여명은 崔대표의 수습책에 반발, 18일 점심 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키로 했다. 당 중진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분위기다. 양정규 의원 등 함덕회 소속 중진의원들은 17일 저녁 모임을 갖고 흥분했다. 이 자리에선 "입이 안 다물어진다", "전혀 짐작도 못했던 일" 등 불만이 쏟아졌다는 후문이다. 이들도 하루 이틀 지켜본 뒤 입장표명을 할 예정이다.

이처럼 쏟아지는 반발로 崔대표 리더십을 둘러싼 당내 분규는 확산될 전망이다. 한 당직자는 "이번 崔대표 발언이 책임 전가로 받아들여져 당내 분란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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