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칼럼>관철동시대 1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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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조훈현(曺薰鉉).서봉수(徐奉洙)의 15년 독주는 입신을 노리는 군웅들에게 좌절과 한을 심어주었다.『우리는 엑스트라다』고 프로기사들은 자조했다.실로 한많은 曺-徐시대였다.曺-徐의 말발굽은 비정해서 풀뿌리가 뽑혀나가고 강물은 패자들의 피로 물들었다. 드디어 팬들도 바뀌지 않는 주인공의 얼굴에 염증을 드러냈다.누가 曺-徐시대를 종식시킬 것인가.사람들은 새 얼굴을 간절히 염원했다.
그 염원 속에서 「신흥 5강」이 머리를 들었다.장수영(張秀英)서능욱(徐能旭)김수장(金秀壯)강훈(姜勳)백성호(白成豪)가 그들이었다.이들이 曺9단과 싸우려면 먼저 서봉수의 벽을 넘어야 했다.어쩌다가 한번씩 천신만고 끝에 서봉수의 벽을 넘는데 성공했다.우레같은 박수와 성원이 뒤를 따랐다.이들의 이름은 곧 「도전 5강」으로 바뀌었다.그 이름엔 曺-徐에 도전해 그들의 시대를 끝장내주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그러나 이들의 스토리는 언제나 비극으로 끝났다.
77최고위 조훈현-장수영(3대0) 78국수전 조훈현-김수장(3대0) 80패왕전 조훈현-강훈(3대0) 81패왕전 조훈현-강훈(3대1) 82왕위전 조훈현-장수영(4대0) 82최고위 조훈현-장수영(3대0) 83왕위전 조훈현-허장회(4대0) 83대왕전 조훈현-서능욱(3대0) 84패왕전 조훈현-강훈(3대0) 84대왕전 조훈현-서능욱(3대0) 85대왕전 조훈현-서능욱(3대0) 86국기전 조훈현-강훈(3대1) 86최고위 조훈현-장수영(3대0) 86대왕전 조훈현-서능욱(3대0) 87국기전 조훈현-강훈(3대0) 혹시나 이번만은 했으나 曺9단은 일말의 방심도보이지 않았고 오는 족족 무참히 꺾어버렸다.『조훈현은 지독하다』는 말이 빗발쳤다.『사람이라면 한번쯤 봐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하는 하소연도 등장했다.
장수영9단은 曺.徐와 동갑이고 조훈현과는 어린시절 같이 공부했으나 그 동문수학생에 의해 끝내 정상에 서보지 못했다.
이밖의 4인은 그들이 힘차게 일어서던 80년 당시 22~24세였다.그들은 가능성이 충분한 준재들이었으나 曺.徐에 의해 가슴아픈 20대를 보내고 말았다.
「도전 5강」중에서 백성호8단은 간간이 허장회7단.정수현8단.홍태선7단 등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를 거론하든 결과는 마찬가지였다.혈기 넘치던 강훈의 상처가 가장 컸다.재기발랄한 서능욱은 아까운 재능을 땅에 묻어야 했다.
86년 강훈은 선수권전인 박카스배에서 김인9단을 3대1로 꺾고 생애 첫 타이틀을 획득,도전 5강중 유일하게 타이틀 보유자반열에 오른다.曺.徐의 중도탈락이 그를 도왔지만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도전 5강」의 집념은 87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시들었다. 등뒤에는 어느덧 양재호(梁宰豪)유창혁(劉昌赫)이창호(李昌鎬)가 창부리를 겨누고 있었고 눈앞의 曺.徐는 산처럼 버티고있었다.80년대를 풍미했던 염원의「도전 5강」.그들은 큰 바람에 꺾여버린 승부세계의 꽃이었다.
도전5강 외에도 기적적으로 도전권을 거머쥐는 사람도 있었다.
장두진(張斗軫)6단은 87년 기왕전.명인전에서 잇따라 曺9단에게 도전했으나 모두 영패.
승부사들의 꿈은 낙화유수였고 曺.徐는 여전히 그들만의 괴기스럽고 지긋지긋한 공방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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