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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어린시절>한화 장종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어,저거봐라….』 교실 창문 너머로 유니폼을 입은 야구선수들이 보였다.교복이나 제복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기마련인 국민학교시절,야구는 그렇게 다가왔다.문득 「한번 해 보고싶다」는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장종훈(張鍾熏.한화)의 첫 사랑은 야구가 아니었다.
충북 영동의 이수국민학교 시절,「소년」 장종훈이 동경한 것은야구가 아닌 유도였다.홈런의 짜릿함이 어떤것인지는 알지도 못했던 시절 또래들을 메다꽂는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그러다교실창문 너머로 야구를 만나고부터 사랑이 싹트 기 시작했다.
『야구를 하겠습니다.』 『아니야,유도를 해야돼.』 『둘다 안돼,넌 공부를 해야돼.』 운동을 시작하려면 흔히 겪기 마련인 주위와의 갈등이 시작됐다.야구부 선생님은 단거리든 장거리든 가리지 않고 1등을 하는 장종훈에게 꼭 야구를 시켜보고 싶다며 야구를 권했다.유도부에서 쉽게 놓아줄리가 없었다.게다가 집에서는 공부를 해야된다며 아예 운동을 그만두라고 했다.
야구부 담당교사와 유도부 담당교사가 싸웠고 아버지는 또 두 선생님과 모두 싸웠다.그 틈바구니에서 장종훈은 어린나이답지 않게 소신있는(?)선택을 했다.『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야구다.』 어린 소년이 선택한 야구는 결국 운명이 됐다.대학진학이좌절되는 바람에 울며겨자먹기로 입은 프로야구 유니폼은 그에게 「훈련생 신화」라는 빛나는 훈장을 달아주었다.
장종훈은 지금도 어머니와 단둘이서 한화 이글스의 전신인 빙그레 이글스의 창원 훈련장을 찾아갔던 날을 기억한다.85년12월3일.훈련이 모두 끝났으니 내일오라던 구단 관계자.하는수 없이운동장 건너편 여관에 방을 잡고 몸을 녹이던 그 밤,바람은 어찌나 차갑게 불었던지….
움츠렸던 개구리는 결국 남들보다 훨씬 멀리 뛰었다.좌절의 아픔을 아는만큼 다시 쓰러지지는 않겠다는 장종훈.교실창문 너머에서 시작된 신화는 이제 두어계단을 올랐을 뿐이다.
〈李泰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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