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제조기 ‘충청’ 이번엔 누구 손 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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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는 충청권이 쥐고 있었다.

1992년 제14대 대선에서 충청의 맹주로 영향력이 컸던 김종필(JP) 당시 자민련 최고위원이 김영삼 민자당 후보에게 힘을 실어 줘 김대중(DJ) 민주당 후보를 193만여표 차로 따돌렸다. 97년 제15대 대선에선 이른바 ‘DJP 연합’으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불과 40만여표 차로 눌러 승리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공약을 내세워 충청 민심을 공략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57만여표로 이겼다.

정가에서는 ‘충청이 손 들어주는 쪽이 정권을 잡는다’는 법칙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전체 유권자의 10%선을 차지하고 있는 충청 민심은 결국 대세를 갈랐다. 이번 대선에서는 ‘충청의 힘’이 얼마나 작용할까.

◇엇갈린 행보=충청 출신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한 다음 충청은 무주공산이었다. 각 정당은 ‘호남ㆍ충청’ 벨트를 만들기 위해 충청 출신 의원들에게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다. 대선 보름 전부터 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는 5일 검찰의 'BBK 사건 수사결과 발표 직후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와 강재섭 대표에게 잇따라 전화를 걸어 “정권교체를 위해 많이 돕겠다”며 사실상 이 후보 지지의사를 천명했다. JP는 그동안 ‘충청 흥행 수표’로 불렸다.

‘포스트 자민련’을 내세운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는 최근 후보를 사퇴, 무소속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 후보로서는 든든한 우군을 얻게 된 셈이다. 심 의원은 이미 충남도지사를 네 차례 역임했고 소속 지역구도 대전이어서 이 지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로써 충청 싸움은 ‘이명박ㆍ김종필’ 대 ‘이회창ㆍ심대평’ 대 범여권으로 새판짜기가 됐다.

◇昌ㆍ李ㆍ鄭 순으로 충청 지지 얻어=이회창 후보는 지난 두 번의 쓰라린 패배 원인 중 하나가 충청도를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분석, 충청도에 남다른 정성을 쏟았다. 그 결과 현재 대전ㆍ충청 지역에서 이회창 후보가 지지율 1위에 올랐다. 조인스 풍향계의 5일 조사 결과 이회창 후보가 25.6%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어 이명박 후보가 23.7%로 바짝 뒤쫓고 있다. 정동영 후보는 13.3%다. 충청은 이회창 후보가 가장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지역이다.

제81차 풍향계 조사(11월28일)에서는 이명박ㆍ이회창ㆍ정동영 후보 순위로 각각 30.5%, 22.2%, 13.4%였다. 지난 주 각 당의 이해관계로 얽힌 짝짓기 이후 이명박 후보는 6.8%P 하락한 반면 이회창 후보는 3.4%P상승했다. 정동영 후보는 0.1%P 하락으로 거의 변동이 없다. 정 후보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5.8%)ㆍ민주당 이인제(3.6%)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한다면 20대 초반의 지지율 확보가 가능해 세 후보의 구도가 팽팽해진다.

◇광주ㆍ전라 변수=그러나 충청표심이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범영남과 범호남이 각각 특정 후보에게 쏠릴 경우를 전제로 한다. 영남과 호남이 표를 두고 서로 뺏고 빼앗는 제로섬 양상에서 충청의 힘이 발휘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경우는 상황이 좀 다르다.

우선 정동영 후보는 텃밭인 범호남권에서 대세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은 34.6%로 후보들 가운데 가장 높긴 하지만 부동층(33.8%)이 다른 곳에 비해 가장 많다. 반면 범영남권은 이명박ㆍ이회창 후보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각각 48.2%, 19.4%로 둘을 합치면 67.6%가 된다. 부동층은 다른 곳에 비해 가장 낮은 15%대를 유지하고 있다.

복수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는 다른 곳보다 지지도가 비교적 낮은 충청에 집중하여 JP를 최대한 활용해야 할것으로 지적됐다. 서강대 이현우 교수는 “이회창 후보는 충청의 부동층을 끌어와 그 기반으로 전국 지지율을 높이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동영 후보의 경우는 부동층이 가장 두터운 호남을 먼저 확실한 우군으로 만든 후 충청을 공략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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