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행락에 韓銀 통화관리 흔들-평소보다 2배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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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통화신용정책의 본산(本山)인 한국은행 자금부 사람들은 요즘 하늘 쳐다보며 가슴 조이기 일쑤다.
기상 통보관도 아니고 나라의 돈줄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날씨 변화에 신경쓸 일이 뭐 있겠느냐 하겠지만 속사정이 그리 간단치않다.경제가 다변화되다 보니 돈 흐름이 예전같으면 별것 아닌 변수에도 방향이 확확 바뀌고 있어 심지어는 날씨 까지도 「진지하게」 챙겨 통화관리에 반영해야 하는 웃지못할 상황에 이른 것이다. 올들어 비교적 잘 끌어왔던 통화가 이달 들어 다시 난맥상을 보이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예측치 못한 단기 변수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날씨가 쾌청했던 주말에는 단풍놀이 수요에 현금이 시중에 터져나가고,비오는 날에는 추곡 수매가 주춤하면서 재정집행이 늦춰지는가 하면 한국통신 입찰에 엄청난 자금이 몰리는등 각종 통화 교란요인 때문에 한은도 오락가락 모양새를 구길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이달 통화사정의 우여곡절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월중 총통화()증가율을 14%대로 묶으려 했던 한은의 구상은 첫 주말부터 어긋나 토요일인 5일 하루에만 한은의 예상치 1천5백억원보다 1천억원이 많은 2천5백억원의 현금이 풀려나 갔다.단풍놀이 자금수요였던 것이다.때가 주말이어서 은행의 지급준비금 계산기준인 적수(積數)로는 이의 2배 이상의 통화가 풀려나가는 효과가 생겼다.
그다음 7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한국통신 주식 입찰에는 금융계 예상치인 4천억원의 4배 가까운 1조4천6백억원의 보증금이 몰렸다.여기서만 1조원의 통화가 추가로 풀려나간 셈이니 당연히 한은은 휘청거렸다.
「냉온탕식 통화관리」라고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던 17일과 19일의 환매채(RP)조작 과정과 그후 자금 추이를 보면 사정이 더욱 기구하다.
17~19일 사흘동안 추곡수매자금 2천억원을 포함해 5천억원의 재정자금이 집행될 예정으로 파악했던 한은은 17일 은행권에6천억원의 RP를 추가로 묶어 통화수위를 조절하려 했다.그러나17,18일 이틀간 궂은 날씨에 추곡수매가 극 히 부진했고 지방교부금등의 집행도 늦춰져 실제 재정집행 실적은 당초 전망치보다 3천5백억원이나 적게 나타났다.
그새 RP 추가규제로 콜금리가 치솟는등 금리가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자 한은은 19일 6천억원어치 RP를 예정보다 앞당겨다시 풀어버려야 했다.RP를 푼데다 그후 재정집행이 다시 늘면서 은행들은 언제 그랬느냐는듯 지준이 남아돌아 22일에는 한은대출금 5천억원을 갚을 정도까지 갔고 한은은 23일에는 만기가온 RP 2조원에 새로 1조5천억원까지 더해 3조5천억원의 RP를 은행권에 배정하기에 이르렀다.물론 이 과정에서 이달 증가율 목표인 14%대는 불가능해졌 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예기치 못했던 변수에 아울러 한은의 예측력 부족으로 인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한정된 RP조작 위주의 단기적인 통화관리가 이미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총량은 이제 1백24조원에 이르렀고 돈 흐름은 날 로 기민해지고 있는 마당에 기껏 2조~3조원의 RP를 뒤따라가며 조작해봐야 제대로 대응이 될리가 없는 것이다.
내년에는 지방자치제 선거와 외국인 주식투자 확대,소비 증가등통화관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들이 더욱 많이 기다리고 있다.전체유동성()의 30%에도 채 못미치는 의 하루하루 움직임에 연연해 통화관리를 하다보면 날씨까지 따져야 하는 이번같은 일이 계속 일어날테고 그 결과 다치는 것은 금리와 물가등 다른 거시지표들일게 뻔하다.
『이제 통화든,금리든 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스려나가야 여러가지 교란요인에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그런 점에서 이번의 경우 금융권이 일시적인 사태를 확대해석한 느낌이 든다』는 한 시중은행 임원의 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
〈李在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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