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상>WTO비준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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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모든 정치는 지역적」이라는 말이 있다.거창한 목적이나 명분보다 지역구나 이익집단의 이해관계가 항상 정치를 움직인다는 뜻이다.세계무역기구(WTO)협정이 미국내 정치의「볼모」로 잡혀있는 사정이 이를 반증한다.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을 주도했고 WTO체제에서 누구보다 많은덕을 본다는 미국이 의회비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사정은 분명 하나의 아이러니다.
연내비준이 실패할 경우 1백24개국이 어렵게 서명한 협정서는휴지가 된다.클린턴의 표현대로 「물가에서의 위험한 정치게임」이다. 비준반대의 가장 큰 명분이었던 주권문제는 가닥이 잡혔다.
WTO회원국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6개월의 사전통고로 탈퇴가 가능하다.이 절차를 별도 국내입법으로 명시하는 흥정이 진행중에 있다.
문제는 지역및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다.남부지역 섬유업체들은 WTO체제가 출범할 경우 개도국들의 값싼 섬유제품들이 밀려들 것을 우려,지역출신 의원들의 발목을 놓지않는다.
환경및 소비자보호단체의 반대도 끈질기다.미국의 환경및 소비자보호법은 저가.저질 수입품으로부터 환경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효율적인 방벽이었다.새 무역협정은 이들 국내 보호법에 우선해 환경과 소비자를 해친다는 주장이다.
연말까지 레임 덕 회기동안 「신속처리절차」가 적용돼 의회는 찬반표결만 할 뿐 협정 내용을 고칠 수는 없다.따라서 협정내용을 수정할 계산아래 내년회기로 미루자는 목소리도 적지않다.새 협정이 발효될 경우 관세인하로 정부의 관세수입은 계산상 10년동안 3백10억달러가 줄어든다.
세입이 줄어들 경우 그에 맞추어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징수를 늘리도록 예산규칙은 명시하고 있다.다만 상원의원 60명의 동의가 있을 경우 이의 적용을 면할 수 있다.상원비준에 60명의 찬성을 요한다는 사정은 여기에 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측은 WTO출범 10년후인 2005년까지 세계의 소득증가를 당초의 배이상인 5천1백억달러로 늘려잡았다.이중 미국이 1천2백20억달러,유럽12개국이 1천6백40억달러,일본 2백70억달러,여타개 도국 1천1백60억달러다.「비준소동」은 「배부른 흥정」이라는 느낌도 든다. 비준에 대한 비관이나 긴장감보다 비준을 끌어내기까지의「정치적 묘기행진」에 내심 관심이 더 쏠리는 경향이다.혹시나 하며 워싱턴쪽을 기웃거리는 비준반대세력들의 심중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本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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