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불리한 건 쏙 뺀 재경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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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6일 오후 4시쯤 재정경제부는 각 언론사에 문자메시지를 급히 돌렸다. 당초 배포하기로 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7년 하반기 경제 전망' 보고서와 관련된 보도자료를 연기한다는 내용이었다. 마감 시간을 맞추기 위해 초초하게 기다리던 기자는 당황했다. 담당 공무원은 기자의 전화에 "자료를 어제 OECD에서 받았지만 번역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있다. 자료를 꼭 뿌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말투에 곤혹스러운 입장이 읽혀졌다.

기자가 이 재경부 관계자 고민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통화 몇 시간 뒤였다. 이날 오후 5시30분쯤 보도자료가 나왔다. 이 자료에는 한국과 세계 경제에 대한 OECD의 전망과 정책 제언이 요약돼 있다. 하지만 원문과 잘 대조해 보면 자료에는 중요한 부분이 누락돼 있었다.

자료에는 OECD가 '통화정책은 중기 물가안정 목표에 근거해 추진하고,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주택공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을 했다고 돼 있다. 하지만 보고서 원문을 보면 이 문장 바로 뒤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해 도입된 분양가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는 단계적으로 폐지돼야 한다'는 대목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핵심인 분양가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목할 만한 내용을 몽땅 빠뜨린 것이다.

재경부가 번역한 문장도 원문의 뜻과 사뭇 다르다. OECD 보고서에는 '통화정책은 물가안정 목표에 중점을 둬야 하며, 주택 가격에 대한 우려는 주택 공급확대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동안 한국의 콜금리 인상이 물가 안정보다는 주택가격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고, 그 결과 원화절상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우회적 비판이다.

재경부가 OECD 보고서를 왜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 6월 OECD는 '2007 한국 경제 보고서' 177쪽 가운데 30쪽을 할애해 부동산정책을 비판했다. 분양가상한제, 분양원가 공개, 높은 양도소득세 등 3가지 정책을 거론하며 그 부작용을 우려했다. 하지만 재경부가 배포한 자료에는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정도로 가볍게만 언급돼 있다. 외국 경제기관의 권고에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문제는 자신의 입맛에 맞으면 열을 올려 선전하고, 입에 쓴 충고는 아예 누락해 버리는 정부의 이중성이다. 경제 부처들은 세계경제포럼(WEF)이 올 10월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전년보다 12단계나 끌어올리자 이의 홍보에 온통 부산을 떨었다.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