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J 심슨 무죄 만들기' 학습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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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흑인 스포츠 스타의 재판→유죄를 증명하는 불리한 여론→초호화 변호인단→미국의 아킬레스건인 인종 차별 문제로 반격시도'.

금지약물(스테로이드) 사용에 대한 위증과 사법 방해 혐의로 기소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홈런왕 배리 본즈(43)에 대한 재판이 8일(한국시간) 시작됐다. 그런데 그 양상이 13년 전인 1994년 세계를 뒤흔든 풋볼 스타 O J 심슨의 재판 때와 너무나 흡사하다. 심슨 때와 마찬가지로 '죄는 지었지만 유능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무죄 판결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심리에서 본즈는 예상대로 무죄를 주장했다. 미 캘리포니아주 연방검찰은 지난달 "금지 약물 사용과 관련, 2003년 연방 대배심(grand jury)에서 거짓말을 했다"며 본즈를 위증과 사법 방해(obstruction of justice) 혐의로 기소했다.

이날 본즈는 법정 앞에서 팬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했고, 법정 안에서도 뒷짐을 지는 등 상당히 여유 있는 모습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즈 옆에 늘어선 변호인단 때문이었을까. 검찰과 법정 공방을 벌일 6명의 변호인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본즈가 최고의 변호사들 중에서도 '올스타'를 뽑았다"고 표현했다.

◆O J 심슨 변호사가 본즈 변호사로=본즈의 변호사 중에는 심슨의 변호를 맡았던 샌프란시스코의 여성 변호사 크리스티나 아귀다스도 포함돼 있다. 아귀다스는 심슨 사건 외에도 애플 컴퓨터, 휼렛 패거드 등 거물급 고객을 상당수 관리하고 있다.

핵심 변호인인 앨런 루비는 명문 스탠퍼드 로스쿨 출신의 스타 변호사로, 최근 론 곤살레스 새너제이 시장의 뇌물 혐의를 벗겨 내기도 했다. 올해 연봉 1550만 달러(약 140억원) 등 연간 수백억원을 버는 본즈는 이들에게 거액의 수임료를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 자체는 본즈에게 상당히 불리하다. 내연 관계였던 킴벌리 벨이 "본즈가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걸 봤다"고 진술했고, 검찰도 2003년 본즈의 위증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4년간 철저히 준비했다.

그러나 미 언론과 법조계에선 "본즈 변호인들이 심슨 재판의 전략을 이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심슨의 로버트 샤피로, 조니 코크런 변호사는 심슨의 피 묻은 장갑을 발견한 경찰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부각하면서 부적절한 증거 수집의 문제를 물고 늘어져 무죄를 이끌어 냈다. 또 유무죄를 결정할 배심원도 본즈에게 다소 유리할 전망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대부분 본즈를 영웅시하고 있다. 심슨 재판 때도 배심원 12명 중 9명이 흑인이어서 심슨에게 유리한 결론이 나왔다.

◆O J 심슨(사진) 사건=미국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스타 러닝백이었고, 영화배우로도 활약했던 심슨은 1994년 백인 전처와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이듬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97년 전처 가족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선 3300만 달러의 배상 판결이 내려져 사실상 '유죄' 판결을 받았다. 미국 사법시스템의 성과와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사법 방해죄=피의자나 참고인이 수사기관에 허위로 진술하거나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일,
증인·배심원에게 위협을 가하는 등 사법행위에 혼란과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미국 형법.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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