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비자금 수사’ 성과가 방향타 될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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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13면

지난달 30일 오후 검찰 수사관들이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 빌딩 삼성증권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끝낸 뒤 압수물 상자를 가지고 나오고 있다. 압수자료는 검찰 조사를 거쳐 특검에 넘겨진다. [연합뉴스]

“특검팀이 지금까지 쓴 예산은 얼마인가요?”

역대 특검으로 본 삼성 특검 전망

2002년 3월 차정일 특검이 이용호 게이트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 질문 나올 줄 알고, 준비했습니다. 출범할 때 16억8000만원을 배정받았는데, 11억8000만원 썼습니다. 하지만 3개월간 사용한 컴퓨터 같은 수사 장비는 법무부로 넘어가니까, 2억4000만원을 더 빼야 하고….”

2005년 11월 15일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 유전 개발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정대훈 특검이 90일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 특검은 예산 사용 내역을 구구절절이 설명했다. “예산을 44%나 남겼다”는 얘기였다. 예산을 얼마나 남겼는지가 왜 그토록 중요했던 것일까.

이날 수사 결과의 요지는 “이광재 의원이 유전 개발 사업에 관여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인정되지만, 해외 체류 중인 핵심 당사자 허문석씨를 조사하지 않은 상황에서 형사 책임을 물을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수사 기간을 한 차례 연장해 가며 연인원 200여 명을 불러 조사한 결과치고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특검 수사의 책임자로선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2004년 1월부터 3월까지 진행됐던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김진흥 특검은 같은 해 3월 31일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300억원 수수설, 썬앤문그룹의 95억원 노무현 캠프 유입설 등 특검법에 규정된 사건 일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다. 유일한 성과는 최 전 비서관이 기업체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를 추가 기소한 것이었다. 김 특검은 “오늘부로 예산 지출을 중단하면 좋겠지만, 법률상 그렇게 안 돼 있어서…”라며 멋쩍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이 두 건의 특검은 정치 공세에서 비롯된 특검이 자칫 의혹 해명 수준에 머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삼성 특검법 수용 방침을 밝히면서 과거 특검 수사에 대해 “헛일만 했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맹탕’ 특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는 2001년 12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정국을 뒤흔든 ‘이용호 게이트’ 특검.

“시시포스처럼 무거운 돌을 굴리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3월 25일 수사 결과 발표에서 차정일 특검은 “어느 정도 실체적 진실에 접근했다고 확신한다”며 감개무량한 얼굴이었다. 특검 팀은 신승남 당시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에 이어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 등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친인척과 최측근을 줄줄이 구속했다.

여당의 재·보선 완패, 대통령의 여당 총재 사퇴, 검찰총장 중도 하차, 내각 및 청와대 비서진 개편…. 잇따른 파문 속에서도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계좌 추적을 철저히 해 ‘성역 없는 사정’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사 기간(105일), 기소자 수(12명), 수사 비용(16억2000만원)에서도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특검 팀은 김 대통령 차남 홍업씨 비리 정황, 신 총장과 김대웅 당시 광주고검장이 이 전 이사에게 수사 내용을 누설한 혐의를 포착한 뒤 검찰에 넘겨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끌어내기도 했다.

대북송금 의혹 특검의 경우 수사 성과는 있었지만, 시종 정치적 논란으로 속앓이를 해야 했다. 2002년 2월 검찰이 “국익과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수사 유보 방침을 밝힌 뒤 한나라당에서 발의한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송두환 특검 팀은 김대중 정부의 핵심 3인방인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임동원 전 국정원장을 조사해 5억 달러 불법송금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여권 내부의 반발 속에서 특검 수사 30일 연장 요청-대통령 거부-새 특검법 통과-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1999년 10월 첫 특검으로 기록된 옷로비 사건과 파업 유도 사건은 검찰 수사와 다른 결론을 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삼성 특검은 과연 어느 길로 갈 것인가. 현재 진행 중인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특본)의 수사 성과가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특본은 삼성증권 압수수색을 통해 찾아낸 120여 개 ‘차명 의심 계좌’에 대해 추적을 벌이는 등 비자금 조사에 주력하고 있다. 이 조사에서 성과가 있을 경우 특검 수사가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특검이 수사에 착수해서 3개월 남짓한 기간에 성과를 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이용호 게이트 특검 때도 특검 수사 전에 검찰 특별감찰본부가 상당히 많은 조사를 했습니다. 물론 특검 팀에서 수사를 잘했지만, 유전 개발 특검 등이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던 것과는 분명히 달랐어요. 검찰이 얼마나 사전 조사를 해서 넘겨주느냐에 따라 특검 수사가 달라질 겁니다.”(대검 고위간부)

그렇다고 해도, 경영권 승계와 정·관계 로비 등 수사 대상이 광범위한 탓에 정해진 기간 내에 수사를 모두 마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경우 이용호 게이트 특검처럼 다시 검찰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검 팀의 인적 구성이 어떻게 될지도 관심이다. 특검과 특검보(세 명)가 변호사 가운데 임명되고, 그 밑에 검사와 수사관이 파견되는 조직의 특성 때문에 잡음이 날 수 있다. 실제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 등에서는 수사 방향을 둘러싼 이견으로 특검보가 중도 사퇴하기도 했다.

특검 후보 추천권을 가진 대한변협이 구인난을 겪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과 맞물려 있다. 과거 특검에서 볼 수 있듯 수사 성과가 없으면 없는 대로 비난을 받고, 있으면 있는 대로 정치 공방에 휘말리기 쉽다. 변협 관계자는 “삼성 관련 사건을 수임한 적이 없고, 조직 관리 능력과 중량감이 있는 검찰 간부 출신이란 조건에 맞는 인사를 물색하고 있지만, 그런 인물 중에 선뜻 나서는 분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특검은 판사 출신(최병모·송두환·정대훈) 세 명, 검사 출신 두 명(강원일·차정일), 군법무관 출신 한 명(김진흥)이었다. 변협은 10일 상임 이사회에서 특검 후보로 추천할 세 명을 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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