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男과 깐깐女의 우당탕 소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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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14면

곤충학 교수 김상민(설경구)과 유리공예가 윤진아(김태희)는 결혼 2년 만에 결별한다. 이유는 ‘성격 차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통 불가’다. 남자의 무심함에 여자는 속상하고, 여자의 깐깐함에 남자는 짜증이 난다.

싸움

무심함이 깐깐함을 낳고 깐깐함이 무심함을 낳는 악순환. 그들은 “싸우는 데도 지쳐서” 이혼한다. 이혼 뒤 3개월 만의 재회, 상민의 변함없는 ‘예민 결벽 과다 집착형 새가슴 증후군’과 다시 한번 마주친 진아는 ‘살의’에 가까운 분노를 느끼고,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다.

결혼 2년 만에 이혼한 남녀가 완전히 헤어지지 못하고 사사건건 부딪치게 된다는 이야기의 기본 설정은, 한지승 감독 본인이 연출했던 TV 드라마 ‘연애시대’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영화 ‘싸움’은 TV 드라마 ‘연애시대’의 단순한 극장판이 아니기를 욕망한다. 문제는 그것이 단지 욕망에 그치고 만다는 점이다. 영화는 ‘샤방샤방 로맨틱 코미디’를 벗어나려는 욕망은 드러내지만, 액션과 스케일만으로 그 욕망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영화 ‘싸움’은 ‘알콩달콩 사랑싸움’을 과장된 만화적 화법으로 그려낸 한바탕 소동극이 된다.

‘싸움’은 또 ‘하드보일드 로맨틱 코미디’이기를 욕망한다. ‘하드보일드’가 건조한 문체로 현실의 잔혹함에 도달하려는 작법을 뜻한다면, 이 영화는 전혀 ‘하드보일드’하지 않다. ‘싸움’에는 낭만적 로맨스의 어두운 이면 또는 잔혹한 진실 같은 것이 없다.

헤어진 뒤 상민이 느끼는 왠지 모를 허전함이 진아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니라 홧김에 떼어준 시계추에 대한 집착 때문임이 드러날 때, 그는 충분히 흥미로운 문제적 캐릭터였다. 그러나 상민이 집착하는 시계추에 숨겨진 의미가 드러날 때, 그는 평범한 소심남으로 전락한다. 그 순간 영화는 일관성을 잃고, 화려한 수사는 자신의 욕망을 배신한다. 이후의 작은 반전은 일종의 사족에 불과한 것이 된다.

사랑 얘기가 새로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스케일이 아니라 섬세한 관찰과 묘사라는 것, 이것이 ‘연애시대’와 ‘싸움’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증명해주는 평범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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