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떠다니는 원유 1만t… 내일까지 제거 못하면 만리포 '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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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충남 태안 만리포 해상에서 발생한 기름 유출 사고로 태안반도와 만리포.천리포 지역의 새우.전어 양식장과 갯벌.해수욕장의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로 꼽히는 시프린스호 때와 비교하면 기름 유출량이 2배가량 많다. 해양수산부와 해경이 방제선을 급히 현장에 투입했지만 2~4m의 높은 파도로 인해 초기 방제 작업은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프린스 사고와 비교하면=해양부가 '기름 유출량이 1만5000t이고 아무런 방제 작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를 상정해 실시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사고 발생 24시간 후 유출된 기름은 태안반도까지 흘러오게 된다. 48시간이 지나면 만리포.천리포 해수욕장 지역까지 번진다. 그 때문에 초기 방제 작업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뤄지느냐가 피해를 줄이는 관건이다.

해양부에 따르면 시프린스호는 여름철인 7월에 발생한 데다 소리도 해안가에 좌초해 연안 양식장에 피해를 키웠다. 이번 사고는 해안에서 10km가량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 기름띠가 해안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수온이 낮은 겨울철에 발생했다는 점도 피해 방지에는 유리하다. 여름철에는 수온이 높아 기름이 순식간에 확 퍼진다. 겨울철에는 기름이 차가운 바닷물에 요구르트처럼 질척한 상태로 뭉치기 때문에 퍼지는 속도가 느리다.

한국해양연구원 조철호 박사는 "서해는 남해나 동해와 달리 해류보다 조류(밀물.썰물)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름이 서해 전체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 위에 뜬 기름이 밀물과 썰물에 따라 왕복하면서 태안반도 쪽으로 접근할 것이며 도달 시간과 방향은 바람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도 높아 방제 작업 늦어져 =문제는 파도가 높아 방제 작업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날 오후 늦게까지 경비함정 12척과 해양오염방제조합의 방제선 3척이 높은 파도 때문에 사고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고 인근 해양에서 대기했다. 더욱이 이번에 흘러나온 기름은 가스가 많이 포함된 정제되지 않은 원유라 폭발 가능성도 커 신속한 방제 작업이 필요하다.

해양부는 파도가 1m 이내로 잦아들면 방제 작업을 3단계로 할 계획이다. 해양부는 일단 1m 높이의 오일펜스를 친 후 '기름 회수기'로 빨아들이고, 이어 회수 과정에서 퍼지는 기름은 마대처럼 생긴 '기름 착재'로 건질 예정이다.

그래도 안 되면 기름을 녹이는 용제를 뿌리는 3단계 작업을 하게 된다.

현재 국내에서는 1만6500t의 기름을 방제할 수 있다. 해양부는 전국 120여 척의 방제선을 태안 인근으로 집결시켜 본격적인 방제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발 구르는 어민들=태안군 원북.이원.소원.근흥.남면 5개 지역에는 3571㏊의 굴.바지락.전복.해삼 양식장이 있다. 사고 지점과 가까운 원북면 황촌리.방갈리 주민들은 유출된 원유에서 발생한 악취로 구토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문광순(52) 만리포 어촌계장은 "사고 지점과 인접한 새뱅이.배뱅이.구도.안도 같은 섬 앞바다에도 전복.해삼을 키우는 양식장이 있는데 풍랑주의보가 내려 나가 보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시프린스호 사고=1995년 7월 14만5000t급 유조선 시프린스호(국적은 키프로스)가 여수 앞바다에서 A급 태풍 '페이'에 휩쓸려 좌초했다. 배에서 흘러나온 5035t의 기름이 순식간에 남해안 전역으로 퍼지면서 청정해역으로 불리던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은 시커먼 기름으로 오염됐다. 여수 소리도에서 포항까지 230km, 부산 해역 해안 73km가 기름에 오염돼 어장과 양식장 피해가 736억원에 달했다. 연인원 12만 명이 동원돼 5개월간 기름 방제작업을 벌였다. 당시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로 기록되면서 해양오염에 대비한 방제체계 확립의 필요성을 일깨워줬다.

박혜민.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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