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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모턴作 "다이애나,그녀의 새로운 삶"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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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92년 다이애나 영국왕세자비가 불행한 결혼생활 때문에 여러차례 자살을 기도했다는 내용을 담은 저서『다이애나의 진실』(Diana:Her True Story)로 영국왕실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왕실작가 앤드류 모턴(40)이 최근 그 속 편『다이애나,그녀의 새로운 삶』(Diana:Her New Life)을 펴냈다.이 책은 왕실작가중「다이애나파」로 분류되는 모턴이 다이애나비 측근들의 말을 인용,찰스왕세자와의 공식 별거이후 변한 다이애나비의 생활과 앞으로의 희망을 다이 애나편에 서서 서술하고있다.다이애나비가 재혼해 딸을 낳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힌 이 책의 내용을 간추려본다.
[편집자註] 왕세자부부의 공식별거 2주년을 앞두고 발간된 이번『다이애나,그녀의 새로운 삶』은 다이애나비(33)의 지난 2년간의 삶을「자아를 찾아가는 고통스런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왕세자비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을 20세의어린 나이에 성큼 왕실가족에 뛰어든 그녀의 삶은 왕실의 의무에묶인 꼭두각시에 다름아니었으며,이런 생활에 지친 그녀가 이제 자신의 인생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을 불어넣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동서인 사라 퍼거슨 왕자비다.미국의 사업가와 반라상태에서 애무하는 사진이 공개돼 92년3월 앤드류왕자와 공식별거에 들어간 사라는 다이애나에게『최소한 난 나 자신에게 진실했다』고 말 했다고 한다.불행한 왕실생활에 회의를 느끼던 다이애나는『진짜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어떻게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겠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차 3개월 뒤인 6월 다이애나는 왕실,즉 시댁의 차가움을 실감하는 사건을 겪는다.다름아닌『다이애나의 진실』을 둘러싼 시댁식구들의 냉담한 꾸짖음이다.
왕실은 그녀가 책의 발간에 관여했다고 의심했으며 특히 시할머니인 여왕모후와 시아버지인 필립공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필립공은『찰스가 카밀라(찰스의 애인)에게서 위안을 찾는 것도무리는 아니다』는 내용의 편지를 여러차례 보냈을 정도였다.이혼한 부모의 딸이라는 사실도 시댁식구들에게는 흠으로 지적됐다.
사실 다이애나는 남편과 상의해 이때쯤 별거문제를 제기하려 했으나 찰스는 부모앞에서는 입도 뻥긋 못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그리고 왕실가족의 전화도청 테이프가 잇따라 대중지에 폭로되면서 왕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살벌한 곳으로 변해갔다.
92년 8월 왕실에서 은밀히 찰스부부의 별거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때 다이애나와 제임스 길비로 의심되는 남자와의 전화내용이언론에 공개됐다.다이애나는 이것이 자신을 수세로 몰려고 하는 공작의 하나라고 의심했으며 지금까지 비밀전화.문 서절단기.암호대화를 일상생활로 삼고 있다.
공식별거 후에는 찰스와 다이애나비의 방이 경호원들에 의해 주기적 도청장치 점검으로 뒤집어졌으며 다이애나는 왕실이 고용한 경호원들을 믿지 못해 개인적으로 요원을 고용하기도 했다.그러면왕실의 경호원들은 사설요원들을 의심해 다시 방을 뒤지는 일을 반복했다.
별거협상시 다이애나의 최대 관심은 윌리엄(10)과 해리(8)두 왕자였다.유치원교사를 했을 정도로 모성본능이 강한 다이애나는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양육을 직접 책임지고 싶어했다.
그녀는 한때 왕자들과 호주에서 살게 해달라고 여왕에게 제안할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시댁이 왕실인 그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영국법에 의하면 왕(여왕)은 손자를 포함한 직계가족을 돌보고 교육할 권리를 지닌다.특히 미래의 왕인 윌리 엄왕자는 그녀의 아들이 아니라 왕실의 소유였던 것이다.
1717년 제정된 이 법에 대해 알게 된 다이애나는 이후 별거나 이혼등의 협상에서 혼란스런 입장에 빠지게 됐다.
별거협상이 중요한 고비에 들어섰던 92년 11월 왕세자부부는겉으로 화해의 노력이란 미명아래 함께 서울을 방문했다.그러나 다이애나는 이때 사라비에게 전화를 걸어 『난 이곳을 탈출해야만해』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아무튼 영국 왕실의 동화는 92년 12월 왕세자부부의 공식별거로 슬픈 종막을 고했다.이후 다이애나는 켄싱턴궁에서 혼자 살며 보다 자유로운 삶을 찾아 나설 준비를 했지만 보이지 않는 왕실의 조종에 의해 여의치 않았다.왕실은 배신한 며느리를 배제하고 차기 왕인 찰스의 이미지를 고조시키는 일에 조직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별거후 그녀는 메이저 총리를 찾아가 자신이 영국의 명예대사로봉사활동등에 나서고 싶다는 뜻을 전했으나 여왕은 그러한 역할은찰스왕세자의 공식직무라며 허락하지 않았다.또 그녀의 공식일정도많이 줄었다.그러자 다이애나는 고민끝에 별거 1년만인 93년 12월 공식생활에서 은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소설가인 제프리 아처의 도움으로 은퇴성명을 발표한 그녀는 『결혼후 처음으로 내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별거후 다이애나비를 괴롭힌 또 하나의 문제는 그녀가 가는 곳이면 어김없이 쫓아와 사진을 찍어대는 사진기자들이었다.특종을 노리는 이들의 끈덕진 공세와「미래왕의 어머니」라는 위치 때문에다이애나의 활동반경은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외로움에 빠진 그녀는 찰스진영의 전략에 대응하는 중요한 의사결정등을 점성술가에게 의존하고 있고 자신이 전생에 수녀였다고 믿으며 요즘은 에이즈환자나 매맞는 여성,마약중독자등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조용히 나서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녀가 자신의 육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그녀는 한 측근에게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찰스가 윈저궁의 유아원에서 나에게 청혼했을 때 왠지 내가 왕비는 되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다.내 속의 목소리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왕실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한 그녀는 자신을「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창녀」라고 묘사했는가 하면영국왕실을「나환자 수용소」라고 경멸하기도 했다.
그녀가 진짜 자신의 육감대로 왕비의 관을 쓰지 않을지는 빠르면 내달이면 판명날 듯하다.왕세자 부부의 별거가 2년이 넘으면이혼절차밟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찰스왕세자가 TV에 직접 출연해 카밀라와의 간통을 스스로 밝힌 이상 다이애나는 간통혐의로 이혼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그러나 다이애나는 자신이 먼저 이혼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내가 이혼의 책임자로 공식화되기 싫다」 는 이유에서다. ***“이혼 먼저 요구 않을것” 세계에서 가장 부러움을 사던 다이애나비는 남자문제에 있어서는 가장 불행한 여인의 하나로 꼽힌다.남편은 다른 여자때문에 그녀를 버리고 한번도 아내를사랑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는가 하면 별거후 아버지같은 사랑으로 자신을 돌봐주었던 보디가드 베리 매나키는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한때 친구로 위안을 얻었던 제임스 길비는 도청사건이후 그녀곁에서 멀어졌으며 승마코치 제임스 휴이트는 자신의 얘기를 돈에 팔아 그녀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그러나 작가 앤드류 모턴은 다이애나가 모든 고통을 겪으며 이제서야 자기 인생을 주도하는 성숙한 여인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또 그녀가 측근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재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녀가 의지하는 점성가들은 그녀의 다음 배우자가 프랑스인일 가능성이 많으며 그녀가 프랑스에 정착할 지도 모른다고 예언하고있다.왕실의 장식품에서 벗어나 자유를 선택한 그녀 앞에는 어떤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李 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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